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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 >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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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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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7/31(월) "너무 두려워서 이 자료를 2년 정도 책상에 넣어뒀어요“
번 호 글쓴이 시사자키(sisa_spe) 날 짜 2017-07-31 오후 5:03:12
조 회 263 추 천 2 첨 부  
구수정 이사 “베트남 중부, 한국군 거쳐간 마을마을마다 민간인 학살”

- 운명적으로 만난 문건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범죄>
- 1999년 봄,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장 45일간 답사
- 베트남 민간인 학살 1966년 집중적으로 이뤄져
- 주민 소개과정에 남아있던 노약자, 여성, 어린이들 학살
- “갓 태어난 우리 아기만은 살려달라 그렇게 빌었는데..”
- 민간인 학살 약 80여 건, 9000명 가량의 민간인 희생 추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7월 31일 (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구수정 상임이사 (한베 평화재단)


◇ 정관용> 일본군 위안부 길원옥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길원옥 여성평화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1회, 이번 회에 수상을 하게 됐는데요. 수상자로 어떤 분이 결정이 됐냐면 오랫동안 베트남전 당시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그 진상을 국내에 알려오고 또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펼쳐오신, 한베 평화재단의 구수정 이사가 제1회 수상자로 결정이 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부터 시작된 그 상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 알리기 운동을 해 오신 분이 수상하셨다. 의미가 상당히 있는 것 같죠. 그래서 한베 평화재단의 구수정 이사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구수정> 안녕하세요.

◇ 정관용> 먼저 아직 청취자분들이 제가 간략히 소개는 했습니다마는 길원옥 여성평화상이 뭔지 모르시거든요. 조금 소개해 주세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상인지.

◆ 구수정> 제가 듣기로는 길원옥 할머니의 뜻을 받아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그런 여성들이나 언론인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이 위안부 할머님들을 돕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등 여러 단체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1회 수상자가 될 것이 너무 당연한 일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우리 구수정 이사님이 수상자가 됐을까요?

◆ 구수정> 할머니들 같은 경우 최근에 당신들의 상처나 아픔에만 이렇게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시각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분들의 상처를 보듬는 그런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그래서 지금 현재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도 돕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제가 좀 부족하지만 수상 대상자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말씀 들으니까 참 할머님들이 더 거룩해 보입니다. 본인들의 그 엄청난 피해, 그런데 나와 비슷한 피해를 받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분들과 함께하자 그런 뜻?

◆ 구수정>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우리 구수정 이사님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 진상을 우리 국내에 알리기 시작한 게 벌써 한 20년 가까이 되죠?

◆ 구수정> 1999년이니까요.

◇ 정관용> 어떻게 그걸 알리기를 시작하셨어요?

◆ 구수정> 저는 그 당시에 유학생이었어요.

◇ 정관용> 어디에요?

◆ 구수정> 베트남에서요.

◇ 정관용> 베트남에서 공부하셨어요.

◆ 구수정> 베트남에서 현대사를 전공했는데요. 당시에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제가 논문의 주제를 한국군의 베트남전 개입 연구로 잡았어요. 그 과정에서 한국군 관련 자료를 쭉 수집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건 하나를 만나게 됐는데..

글쎄요, 그게 운명 같기도 하고. 제 손에 아주 어렵게 들어온 그 문건의 제목이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 범죄>라고 하는 그런 내용의 문건이었습니다.

◇ 정관용> 베트남 정부가 만든 문건이에요, 아니면?

◆ 구수정> 베트남 지방정부에서 발행했던 문건이에요.

◇ 정관용> 그 내용이 어땠는데요?

◆ 구수정> 베트남전쟁 시기에 한국군의 잔혹행위를 기록한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베트남 중부 곳곳에 거의 한국군이 거쳐간 마을마을마다에서 일어났던 학살, 민간인 학살.

◇ 정관용> 민간인 학살.

◆ 구수정>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정관용> 모든 한국군 부대가 거쳐간 마을마다 다 그랬다고요?

◆ 구수정>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학살이나 전시 성폭력 문제라든지 아니면 한국군의 폭력행위, 잔혹행위, 살해행위, 민간인 살해행위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죠.

◇ 정관용> 그래서 처음에는 못 믿으셨는데..

◆ 구수정> 반신반의 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요? 확인해 보셨어요?

◆ 구수정> 사실은 너무 두려워서 이 자료를 발견하고도 한 2년 정도는 책상 서랍에 그대로 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에 일본의 ‘피스 보트(Peace Boat)’라고 하는 시민단체가.

◇ 정관용> 네, 있습니다.

◆ 구수정> 한국군 민간인 학살지역들을 다니고 있었더라고요. 아마도 97년인가 98년인가 일본의 피스보트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초청해서 피스보트에 같이 승선을 했는데 첫 기착지가 베트남의 다낭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 베트남 다낭의 인근에 있는 한국군, 그곳도 민간인 한국군 민간인 학살지역입니다, 트위보 마을이라고. 그 마을에 이제 한국인들이 가게 되죠.

그래서 그 마을에 들어가봤더니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름들이 쭉 적혀 있는 위령비를 만나게 되고 또 그 마을에는 제주의 우리 무명천 할머니처럼 한국군 학살로 턱의 절반이 거의 다 날아간 그런 할머니가 계셨어요. 그래서 이런 할머니도 만나게 됐고.

◇ 정관용> 피해를 입고 생존해 계신.

◆ 구수정> 그랬죠. 당시에는 생존해 계셨고요.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한국의 작가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피스보트는 다낭이 하나의 기착지이고 또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는데.

◇ 정관용> 떠났죠.

◆ 구수정> 그런데 이제 이 작가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냥 다낭에서 내려버렸대요. 그리고 다낭에서부터 어찌 어찌 굉장히 고난을 겪으면서 호치민에 있는 저를 찾아왔는데 그때 그 작가들의 얘기도 일본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그 자료 문건을 꺼내면서 "어쩌면 사실일지도 몰라요. 이런 문건이 있어요" 이러면서 이제 우리가 아직 여력이 굉장히 미약하지만 앞으로는 일본 친구들 손에 이끌려서 우리가 등 떠밀려서 이렇게 그런 과거의 현장을 찾아나서는 일은 하지 말자.

◇ 정관용> 우리가 자발적으로 해 보자.

◆ 구수정> 우리가 한번 직접. 우리가 직접 스스로 그 현장을 찾아서 과거의 진실들을 대면해 보자 이런 결의로 했었죠.

◇ 정관용> 그래서 시작이 됐군요.

◆ 구수정> 그렇죠.

◇ 정관용> 그래서 몇 군데나 방문하셨고?

◆ 구수정> 99년 봄이었는데요. 제가 45일간 다녔어요. 손에는 자료 하나, 이렇게 딱 종이조각 같은 자료 하나를 쥐고 사실은 저도 생전 처음 듣는 그런 마을들을 이제 지명에만 의존해서 그래서 베트남 중부로 떠났는데 하루에 한 3개 마을 정도씩 그렇게 한 45일간 다녀서.

◇ 정관용> 그렇게 다니셨더니 문건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더라?

◆ 구수정> 그렇죠. 사실은 남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이제는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 문건 속의 지명들도 이미 다 사라져버렸던 거예요. 그러니까 75년 이후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 통일 베트남은 모든 도시의 지명이나 이런 것들을 다 개명을 합니다. 사이공이 호치민이 되는 것처럼요.

◇ 정관용> 그걸 더듬어 더듬어 과거의 흔적을 찾아서.

◆ 구수정> 그렇죠. 그래서 이제 저는 사실 이 자료를 가지고 과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현장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중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길 가는 사람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제가 이러이러한 곳을 찾는데요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제게 이정표 역할을 해 주시는 거예요.

◇ 정관용> 다 아는 얘기군요,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이니까.

◆ 구수정> 중부에서는 적어도 대부분의 분들이 손끝으로 이렇게 가리키는 곳을 쭉 따라가다 보면 그러면 위령비가 나오고 또 집단 무덤들이 나오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우리 한국군이 베트남에 간 게 몇 년도죠?

◆ 구수정> 1964년에 처음 파병이 시작돼서 64년까지는 비전투부대가 파병이 됐었고요. 65년부터 전투부대가 가게 되죠.

◇ 정관용> 전투부대 가서 돌아올 때까지 계속 똑같은 행태가 반복된 겁니까?

◆ 구수정>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고요. 1965년 말경에 전투부대가 베트남 들어가면서 그 이듬해인 1966년에 집중적으로 학살이 일어납니다. 그랬던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보통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일이 거기에 기지를 건설하는 거죠.

◇ 정관용> 자기 부대 기지 건설.

◆ 구수정> 그렇죠. 그런데 부대의 기지를 건설하려면 일단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을 소개시켜야 돼요. 그런데 주민들을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대부분 학살이 발생했던 것처럼 보여져요.

◇ 정관용> 그 마을 주민들을 그냥 강제로라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 학살을 해 버렸어요?

◆ 구수정>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이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베트남 같은 경우는 집집마다 제단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조상 숭배가 중요한 그런 전통인데요. 보통 3년상도 치르고. 그러니까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청장년층이나 무기를 들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은 마을을 떠난다 하더라도 이제 제단에 매일 향을 바치고 꽃을 바칠 여성들이나 아니면 노인들이나 아니면 임산부, 아니면 어린 어린아이들 이런 사람들은 집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이제 참전 군인들도 말씀을 하시는 게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을 공격하기 전에는 선무방송, 선제방송 이런 걸 했다고 해요.

◇ 정관용> 나가라 이렇게?

◆ 구수정> 나가라고. 그런데 이제 베트남 주민들 같은 경우는 나는 여성이니까.

◇ 정관용> 나는 괜찮겠지.

◆ 구수정> 나는 민간인이니까. 그리고 조무래기 아기들이니까, 나는 노인이니까. 그리고 이제 집에서 도시로 이주를 하더라도 집을 지킬 수 있는 한두 사람은 남겨두는 이런 경우가 많았던 거죠.

◇ 정관용> 그렇게 남아 있는 여성.

◆ 구수정> 그런 분들은 거의 다 학살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학살의 대상이 젊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 노인, 아이들이었단 말이에요?

◆ 구수정>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이제 주민 소개 과정이 아닌 우발적이거나 아니면 예를 들어서 한국군이 이동을 하는 데 부비트랩이 터져서 여기는 베트콩이 있는 마을이야 하고 마을을 덮치는 경우에도 청장년층이나 이런 사람들은 일단 한국군을 보면 다들 달아나요.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여성이거나 노인이거나 아이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런데 왜 그들을 학살하죠?

◆ 구수정> 이제 뭐 참전 군인들의 경우에는 이런 얘기를 한번 들은 적은 있어요. 이제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미리 마을에서 모두 나가지 않으면 모두 베트콩으로 간주하겠다 이런 방송들을 했었다. 그런데 그래도 남아서 이렇게 죽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건 천재지변과 똑같은 사건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건 물론 베트남어로 제대로 방송들을 다 했답니까?

◆ 구수정> 글쎄요. 베트남어로 방송이 제대로 됐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학살 지역의 주민들의 증언들 속에는 통역병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거야 이런 내용은 제가 많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 말은 통역병이 없었다는 얘기군요?

◆ 구수정> 있었던 곳도 있지만 통역병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우리 아기만은 갓 태어난 아기니까 이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내가 그렇게 빌었는데.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한국군에게 전달이 안 되었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 갓 태어난 아기들도 죽였단 말입니까?

◆ 구수정> 베트남의 학살 지역들에 가보면 위령비들이 곳곳에 서 있습니다. 위령비라고 하는 건 우리로 치면 추모비와 같은 것이죠. 그런데 이런 비에는 당일 한날 한시에 한국군에게 희생된 그런 분들의 이름이 쭉 써 있어요. 그리고 이제 일련번호들이 쭉 매겨져 있죠. 그런데 예를 들면 하미마을 같은 경우에는 모두 135명이 현재 희생이 됐는데 일련번호 맨 마지막 135번의 이름을 보면 우엔 티 보잔입니다.

◇ 정관용> 무슨 뜻이죠?

◆ 구수정> 성이 우엔이고요. 티라고 하는 건 여성들이 많이 쓰는 미들네임이에요. 그래서 우엔 티. 아, 여성이구나. 우엔이라고 하는 성을 가진 여성이구나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보잔이라고 하는 것은 무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이 여아가 태어난 연도가 적혀 있어요. 그런데 1968년으로 적혀 있어요.

그런데 이 하미학살은 1968년 음력으로 1월 24일에 일어난 그런 학살이에요. 그런데 일련번호 132번 역시 보잔입니다. 연도가 1968년으로 써 있어요. 일련번호 133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도 일련번호 132, 131 이런 데 보면 정식 이름이, 공식 이름이 안 써 있어요. 우리로 치면 개똥이 이런 식의 아명이나 태명들이 적혀 있어요.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부지기수로 죽어가니까 이 아이들의 이름을 정식으로 지어주지 않는 거죠.

◇ 정관용> 그렇게 해서 우리 구수정 이사께서 조사하신 바로 민간인 학살 숫자가 대략 어느 정도 됩니까?

◆ 구수정> 2000년으로 기억을 하는데요. 그때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제가 베트남전쟁 시기에 한국군 민간인 학살사건이 약 80여 건이 일어났고 9000명가량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제가 발표를 한 사실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통계는 아니에요. 이것을 정확한 통계라고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

◇ 정관용> 그런데 9000명으로 추정된다라고 하실 때는.

◆ 구수정> 근거는 있었죠.

◇ 정관용> 있는 거죠. 마을마다 위령비가 다 있고 하니까.

◆ 구수정> 그러니까 제가 현장 답사를 통해서 수집한 그런 수치 그리고 미국 측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보고서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자료. 그리고 베트남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 이런 것들을 종합한 수치예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랬더니 최소한 9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 구수정> 그렇죠.

◇ 정관용> 워낙 충격적이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 듣고요. 내일 다시 한 번 우리 구수정 이사 모시고 한 번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일단 여기까지.

◆ 구수정> 알겠습니다.

◇ 정관용> 한베 평화재단 구수정 이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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