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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6/7(금) [6.10항쟁 32주년]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가 본 보안관찰제
번 호 6997 글쓴이 시사자키(sisa_spe) 날 짜 2019-06-07 오후 4:50:20
조 회 194 추 천 0 첨 부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 '박종철 인권상'
5.18 당시 고3..살아남은 부끄러움에 대입 미뤄
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연루돼 14년 복역
보안관찰제, UN 인권조약에도 이중 처벌 규정
폐지 하려면 국회 논의 필요하지만 쉽지 않아
"보안관찰제와 20년을 싸울 거라 상상 못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8:55)
■ 방송일 : 2019년 6월 7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강용주 (진실의 힘 이사)

◇ 정관용> 이제 며칠 있으면 6. 10항쟁 32주년입니다. 오늘 박종철 인권상 심사위원회가 제15회 인권상 수상자로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시죠. 진실의 힘의 강용주 이사를 선정해서 시상했습니다. 선정 이유가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맞서 우리 사회가 인권세상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했고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맡아 국가폭력의 피해자들 곁을 지키며 슬픔의 연대를 확장했다 이런 선정 이유입니다. 바로 강용주 이사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강용주> 안녕하십니까? 강용주입니다.

◇ 정관용> 축하드립니다.

◆ 강용주> 감사합니다.

◇ 정관용>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맞서 우리 사회가 인권세상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우선 이 얘기부터 해 봅시다. 5. 18 때 광주에 계셨고 고3이셨다고요?

◆ 강용주>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 정관용> 도청에 계셨다고요?

◆ 강용주> 네.

◇ 정관용> 마지막 날 도망치셨다고요?

◆ 강용주> 도청이 함락되는 걸 보고 도청이 계엄군에 의해서 진압되고 도청옥상은 계엄군들이 나오고 그리고 도청 앞 광장으로 시민군들이 포승에 묶여서 끌려나오는 걸 보고 거기서 총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죠.

◇ 정관용> 그리고 부끄러워서 대학도 안 가고 그러셨다고요.

◆ 강용주> 그렇죠. 1년 절에 가 있고 그러다 그때는 누구나 80년 5.18을 겪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죄스러움 그렇게 다 힘들게 살았죠.

◇ 정관용> 그리고 이제 설득돼서 전남대 의대에 가신 게?

◆ 강용주> 1982년입니다.

◇ 정관용> 82년? 그러다가 간첩단 사건에 어떻게 됐어요?

◆ 강용주> 제가 82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저는 광주학살을 겪은 사람이잖아요. 당연히 전두환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하게 됐죠.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원칙적이고 과격하고 저 사람들 표현으로 하면 극렬운동권이 된 거죠. 그러다가 제 고등학교 선배들이 미국 유학을 갔었는데 그분들과 연관돼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이 됐는데 이 사건이 구미라고 하면 미국하고 유럽을 뜻하는 거잖아요. 저는 경북 구미도 안 가봤거든요. 유학도 못 가봤고 그런데 이 사건은 조작돼서 연루되게 됐었죠.

◇ 정관용> 그러니까 미국에 유학 간 고교 선배가 북한에 포섭됐고 그 고교 선배한테 포섭돼서 뭐 이런 거죠, 그러니까.

◆ 강용주> 그렇죠. 그림은 그렇게 그렸었는데 85년 상황이라고 하면 지금 오래된 일 아닙니까? 34년된 일인데. 그때 당시에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했던 거 기억나시죠. 서울 미국문화원 점검하고 그 해 8월달에는 학원안정법이 만들어지고 이런 순간이어서 전두환 정권 입장에서는 학생운동이 이렇게 전투적으로 나오고 미국에 책임 문제를 묻게 되니까 이렇게 열심히 쌓은 학생운동 배후에는 다른 세력이 있고 그게 북한과 연계돼 있다 이런 스토리로 짰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최고권력자가 이런 개별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개입했는가 그런 내용이 별로 밝혀진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나온 자료집을 보면 그 부분이 하나가 있어요. 그건 뭐였냐 하면 각하 지시 사항. 강용주는 전라도 촌놈인데 서울을 왔다갔다 했다. 왜 왔냐, 와서 무엇을 했는가 더 조사해라라는 게 전두환이가 저에 대한 지시사항이었죠.

◇ 정관용> 그랬어요?

◆ 강용주> 그건 국정과거사조사위원회에 남아 있는 자료죠. 그래서 그만큼 제가 전두환이랑 80년 5월달에 총을 들고 싸웠는데 전두환은 그만큼 저를 애정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각별한 관심을 줘서 결국 이 사건이 된 거죠.

◇ 정관용> 그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자가 모두 몇 명이나 됐었습니까?

◆ 강용주> 19명인가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때 다 처음 본 사람들이어서 잘 모르죠. 지금 이름도 잘 모르고요.

◇ 정관용> 무려 14년을 복역하셨어요. 그런데 그 99년에 나오셨는데 98년에 나머지 관련자들은 다 출소했다면서요.

◆ 강용주>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98년에는 뭐였었고 99년에는 뭐였어요?

◆ 강용주> 98년도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 그리고 또 세계적인 양심수였던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양심수들을 석방하려고 만들었던 게 준법서약서였죠. 준법서약서는 저의 생각은 준법서약서 또한 우리 헌법에서 보장되어 있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다. 어떤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의 내면을 추측하고 그걸 이유로 해서 차별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고.

◇ 정관용> 그러니까 98년 그 시점에서는 양심수들 준법서약서만 쓰면 다 석방해 준다 이렇게 했는데.

◆ 강용주> 그런데 저는 그것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 정관용> 거부하셨고?

◆ 강용주> 거부해서 저는 이 사건의 넘버3도 아니고 넘버4거든요. 그런데 원투스리는 98년 8월달에 다 나가고 저만 준법서약서를 안 썼다고 남겨뒀던 거죠.

◇ 정관용> 그다음에 어떻게 나오셨어요?

◆ 강용주> 그다음에 국제사회에서 비판들이 커지고 그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인권단체들이 격렬한 비판들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준법서약서 쓰지 않은 상태에서 저를 99년 2월에 출소를 시켰었고 법무부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준법서약서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다가 2003년도에 법무부에서는 예규를 폐지를 했어요. 준법서약에 관한 예규를. 국제사회에서는 우리나라이것에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하는 지적이 많고 그걸 안 썼다고 해서 차별처우를 준 것에 대해서 비판이 많아서 2003년도에 준법서약서를 폐지한 거죠. 실질적으로 제가 98년도에 주장했던 말은 5년 뒤에.

◇ 정관용> 법무부가?

◆ 강용주> 받아들인 거죠.

◇ 정관용> 그리고 어쨌든 85년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혹시 재심을 했나요.

◆ 강용주> 지금 제 사건 관계자들이 2017년부터 재심 중이에요. 그런데 저는 재심을 안 한 상태인데 모든 분들이 하고 있고.

◇ 정관용> 다른 분들은 재심신청을 했고?

◆ 강용주>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사람이 조사받고 재판을 받는다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그때 저는 우리 관계자들이 구미학생 관계자들이 재심을 신청하기 전에 2017년 4월에 보안관찰법 신고 의무 위반으로 형사재판에 이미 입건돼서 재판이 진행 중이었어요. 그래서 이 재판을 둘 다 할 수가 없는 거예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 강용주> 너무 힘들거든요.

◇ 정관용> 이제 바로 그 보안관찰 이야기를 좀 합시다. 그러니까 어쨌든 준법서약서도 안 쓴 상태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99년에 출소하셨고 출소하면서 곧바로 그 당시 제도로 보면 보안관찰 대상이 되는 거잖아요.

◆ 강용주> 그렇습니다.

◇ 정관용> 보안관찰 대상이 되면 뭘 해야 하는 거죠?

◆ 강용주> 보안관찰 대상이 되면 자기가 3개월 동안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놀러갔고 그다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집회를 갖고 하는 것을 다 보고를 하게 돼 있죠.

◇ 정관용> 3개월마다 한 번씩?

◆ 강용주>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그 끝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외 관할 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내용. 제한이 없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뭐냐 하면.

◇ 정관용>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보안관찰 대상이 되는 거예요?

◆ 강용주> 이 보안관찰 대상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형을 받거나 군형법이나 형법상에서 내란이나 반란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여기 대상이에요. 그래서 국가보안법 위반자인 저뿐만 아니고 반란죄, 내란죄를 저지른 전두환, 노태우도 같은 대상인 거죠.

◇ 정관용> 그러네요.

◆ 강용주> 그렇다면 법이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이퀄리 저스티스, 공평하게 적용돼야지 법이지 그렇지 않으면 폭력인 거죠. 보안관찰하지 않으면서 수백 명의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내란해서 국권을 찬탈한 사람한테 안 하면서 조작당하고 억울하다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하는 게 전두환 씨는 이번에 자기 자서전을 통해서 12. 12, 5. 18에 대해서 합리화를 시켰지 않습니까? 누가 재범의 우려가 있는 거예요. 이것은 법으로서 잘 존립할 가치가 없는 거죠.

◇ 정관용> 보안관찰제도 자체가 문제 있다. 그래서 3개월마다 가서 신고해야 되는 걸 일절 거부하셨죠?

◆ 강용주>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는 보안관찰법은 UN인권조약 시민인권 권리에 관한 규약 중에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다. 이중 처벌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때는 법률이나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가능한 거죠.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하는 보호관찰은 법원에서 보호관찰 몇 년 이렇게 때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는 아니면 형을 다 마치지 않고 가석방 기간 동안에 하는 거죠. 저는 형을 살고 사면복권이 됐어요. 그런데.

◇ 정관용> 법원에서 판결한 바도 없고 보안관찰 판결한 바도 없고?

◆ 강용주> 없습니다. 2년마다 갱신을 하는 거고 죽을 때까지 계속 갱신을 하는 거예요, 18년 동안.

◇ 정관용> 검찰이 계속 갱신하는 거예요?

◆ 강용주> 계속 갱신하면서. 이것은 새로운 신군법이다. 행위의 결과도 아니고 근대 형법 원칙은 그런 거잖아요. 어떤 사람, 네가 어떤 행위를 했으니까 거기에 결과에 따라 처벌받는 거지 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관용 교수님은 너무 잘생겨서 여자들이랑 연애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처벌받아도 할 말 없는 거죠. 왜냐하면 저는 행위가 아니고 그럴 개연성이 있다라고 처벌받았기 때문에 과장을 한다면 그런 거라는 거죠.

◇ 정관용> 그래서 99년 출소 이후에 3개월마다 해야 할 의무를 안 하셨잖아요. 그랬더니 어떻게 하던가요.

◆ 강용주> 그랬더니 제가 99년도에 의과대학에 다시 편입을 했어요. 다시 복학을 했어요. 내과 2학년으로 복학을 해서 본과 2학년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2000년도에. 시험공부를 하고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건장한 사람 2명이 저를 확 덮치는 거예요. 당신들 뭐냐. 보안관찰제 신무 위반이라고 해서 체포영장을 갖고 와서 그래서 본관으로 가야 되는데 학생경찰서에 가서 48시간 동안 있었죠. 또 마찬가지로 2010년도에는 이명박 정권 시대죠. 그때는 저를 기소를 해서 벌금을 때렸죠. 그리고 2016년에도 마찬가지로 2016년에 제가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 정관용> 의사가 돼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 강용주> 요양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경찰이 잡으러 왔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왜 그러느냐? 수배 중이래요. 그럼 영장 가져와라. 영장 없이 그냥 가자는 거예요. 2016년 12월 일이에요. 이 무도한 일들이 불과 몇 년 전에 벌어진 거예요.

◇ 정관용> 3개월마다 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 그때 그때 뭘 하는 줄 알았더니 또 그것도 아니네요. 그냥 생각나면 한 번씩 하나요?

◆ 강용주> 그때마다 할 수도 있고 모아서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전문용어로 엿장수법이라고 하는 거죠.

◇ 정관용> 어쨌든 보안관찰 처분에 대해서 이건 문제 있다, 행정소송을 하셨습니다마는 그건 패소하셨어요. 그렇죠?

◆ 강용주> 행정소송은 내가 2002년도에 행정소송 첫 번째 냈었는데요. 그것도 내고 헌법소원도 냈었는데. 그때 당시에 저 소송을 대리했던 분이 강금실 변호사였어요. 그런데 그 1년 반 뒤에 저를 갱신, 2년하다 갱신한다 했잖아요. 그 갱신한 사람이 강금실 장관이죠. 이분들은 인권민주주의 하는 데 자기가 변호사 때는 잘못했다 하고 자기들이 장관 하면 자기가 믿었던 인권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고 거꾸로 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제도를 바꿔야 되는데, 근본적으로. 거기에 손은 아직 못 댔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쨌든 아까 언급하신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으셨잖아요. 2018년 2월에 법원이 무죄 선고를 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서 무죄가 확정됐네요. 이건 왜 또 무죄가 된 겁니까?

◆ 강용주> 이게 지금 보안관찰재판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3개월마다 한 번씩 신고를 해야 되는데 신고의무를 불이행한 것은 누가 봐도 실정법 위반인 거잖아요. 네가 왜 실정법 위반이냐라고 해서 사정은 봐줄 수 있지만 무죄를 때릴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저를 맡은 재판부는 뭐라고 봤냐면 강용주가 보안관찰 처분을 받으려면 그 처분이 적법해야 된다. 그런데 저에 대한 처분 내용은 첫째는 신고의무를 안 했다든가 소환에 불응했다고 하는 이미 대법원 판례가 이걸로는 재범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례가 이미 되어 있어요. 그다음에 세 번째는 보안관찰법을 폐지하라든가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하는 것 또한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걸 이유로서 해서 재범이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돼 있는 거예요. 네 번째 조건은 뭐였냐면 제가 진실의 힘에서 치유를 빙자해서 국가보안법 전력자들을 만났다고 하는데 제가 정의의 시대나 치유의 시대를 했던 걸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국가보안법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이 국가보안법 전력자다.

◇ 정관용> 말이 안 되죠.

◆ 강용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법원이 제 손을 들어준 거예요. 강용주가 신고의무를 불이행한 것은 잘못했지만 그 전 단계인 보안관찰 처분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강용주를 처벌할 수 없다라고 하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려준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검찰도 항소를 포기하고.

◆ 강용주> 하려고 했는데 그러고 나서 이제 내가 강용주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해시테그운동을 하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력한 단체들인 참여연대나 민변이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기독교BCC, 인권위원회에서 이건 하면 안 된다라고 사회적 압력들이 커졌죠. 그래서 이분들이 항소를 안 한 거고. 검찰의 입장은 명확하게 얘기했었어요. 이건 법적용이 잘못됐기 때문에 무조건 항소한다.

◇ 정관용> 압력에 굴복한 거.

◆ 강용주> 그렇죠.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촛불 들어서 바꾼 민주정부 효과가 있었죠.

◇ 정관용> 그나저나 2019년 6월 현재 보안관찰제도는 바뀌었습니까, 안 바뀌었습니까?

◆ 강용주> 안 바뀌었어요.

◇ 정관용> 이거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법을 개정해야 돼요, 뭘 해야 돼요?

◆ 강용주> 아닙니다. 저는 법을 개정하는 게 맞지만 법이라고 하는 결정을 하려면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니, 열린우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어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못했지 않습니까?

◇ 정관용> 못 했죠.

◆ 강용주> 그때 가장 사람들이 얘기했던 건 그거죠.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못 하면 우선 7조라도 없애자.

◇ 정관용> 찬양고무죄?

◆ 강용주> 네. 그랬는데 전면 폐지라고 해서 못 했던 거 아닙니까? 보안관찰도 지금 폐지를 하려고 한다면 국회 의석수에서 불가능한 거죠.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국제사회도 다 폐지하라고 그러고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하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대법원에서 이 재심의 우려라고 하는 데서 엄격한 이미 기준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준해서 보안관찰 대상자들을 갱신을 하든가 면제를 하면 된다.

◇ 정관용> 법무부가 그냥?

◆ 강용주> 그렇죠. 그러면 저는 실질적으로 거의 한 3분의 2는 면제될 거라고 보는데 저의 경험에서 보듯이 법무부는 관성대로 하는 거죠.

◇ 정관용> 그냥?

◆ 강용주> 저에게 나온 형사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보안관찰심의위원회는 형사가 올려놓은 걸 그때로 베끼는데 그 사람한테 물었죠. 이건 왜 이렇게 썼냐? 전임자가 썼던 것을 나 그대로 썼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우리 강용주 이사의 눈에서 보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가 별로 다르지 않네요.

◆ 강용주> 꼭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이 민주정부 10년 동안 우리 사회 인권과 기틀을 닦아왔다. 그렇지만 아직 허약해서 이명박근혜 10년 동안 많이 훼손되고 왜곡됐지 않습니까? 그래서 촛불을 들어서 지금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어요. 예를 든다면 이른바 시효, 배상의 시효문제에 있어서 사법농단의 문제였는데 헌법재판소에서 공소시효, 대상 시효 문제를 거는 건 잘못됐다 한정합헌이 나와서 올 4월에 박동운 선생의 진도 간첩단이 배상에 승소를 했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 법무부에서는 과거 청산 패스트트랙을 하겠다 해 놓고 이번에 대법원에 항소를 했어요. 그러면 배상 28년 걸려서 무죄를 받았는데 다시 또 10년을 해야 된다고 하는.

◇ 정관용> 그러니까요. 별로 다르지 않잖아요.

◆ 강용주>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면 부끄러워하기는 한다는 거죠.

◇ 정관용> 부끄러워만 해서 됩니까?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야죠. 제도를 바꾸고요.

◆ 강용주> 그러니까 교수님이 열심히 시사프로에서 국회의원들 많이 나오잖아요.

◇ 정관용> 박종철 인권상을 우리 강용주 이사한테 준 게 정부 정신 차리라고 준 것 같습니다.

◆ 강용주>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2012년부터 16년까지는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맡으셨어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과정을 함께 쭉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또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사를 맡고 계신 진실의 힘도 다 그런 활동 연장선상이고요. 이 모든 공로들이 인정돼서 박종철 인권상을 수상하셨는데 너무 늦게 드린 것 같아요, 상을. 더 일찍 드렸어야 되는데.

◆ 강용주> 아니죠. 이미 이 박종철 인권상을 받으신 분들이 7회는 한진타워크레인 김진숙 동지고 그리고 밀양송전탑 어르신들이고 다 농민 백남기 씨 이런 분들이 받으셨어요. 우리 사회 국가폭력과 싸우고 인권을 실질적으로 하던 분들이 받아서 그분들의 자리에 있는 게 저는 과분하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간첩으로 조작돼서 무려 14년 복역하셨고 그리고 석방된 후에 무려 20년을 보안관찰제도 자체와 온 몸으로 인생을 걸고 싸우고 계셨던 거 아니겠습니까?

◆ 강용주> 뭐 인생까지 걸 건 아니고요. 싸울 만해서. 제가 1999년도에 보안관찰 처음 될 때 이 민주화된 1987년 민주화된 시대에 이걸 20년을 싸워야 된다는 건 저는 상상도 못했어요.

◇ 정관용> 그러게 말입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요.

◆ 강용주> 그렇지만 세상의 발전은 더디지만 그래도 한발한발씩 진전된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게 아니겠어요.

◇ 정관용> 다시 한 번 박종철 인권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진실의 힘의 강용주 이사 고맙습니다.

◆ 강용주> 고맙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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