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유일한 한국인. 1902년에 태어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쫓아 청빈, 겸손, 애국, 봉사의 삶을 살았던 故 한경직 목사. 그가 2000년 남한산성 기슭 6평 남짓한 조그만 거처에서 향년 99세의 나이로 소천하기까지 근거리에서 한경직 목사의 삶을 지켜보고 경험했던 이들의 회고를 방송에 담았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으신 그런 사람이다”
“우리 온 민족의 정신적인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2000년 동안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분”
20세기 한국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목회자이자 세계가 인정한 故 한경직 목사.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추양 한경직’을 기억하는 이들의 회고와 감사가 담긴 <멘토,길을 묻다> 부활절 특집 1부 “한경직 목사의 삶을 말하다“가 방송됐다.
“피가 필요하면 피도 내어줄 분”
일사후퇴 때 함북에서 피난 온 영락교회 최현철 은퇴장로는 처음 찾은 장소가 영락교회였다며 “고향 잃은 피난민들을 입히고 먹이며 품어준 이가 바로 한경직 목사였다”며 첫 만남을 떠올렸다. 생전 한경직 목사는 ‘피가 필요하다고 하면 자기 피도 뽑아주셨을 분’이라며 온 사람에게 무엇이든 나눠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경직 목사 생전에 보필했던 이광순(현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 당시 전도사는 “한참이나 어린 전도사들의 사소한 이야기도 늘 경청하고 존중해줬던 따뜻한 리더십을 기억한다”며 설교를 위해 준비해 놓은 하나밖에 없는 양복을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에게 주고 본인은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강단에 섰던 일화를 얘기하며 “그만큼 자기 것은 하나도 가지지 않았던 한경직 목사였다”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한경직 목사의 모습을 추억했다.
“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한경직 목사의 아들 한혜원 목사는 방송에서 “아버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한테 맡겨주신 것이고 나는 청지기일 뿐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지 내 마음대로 쓰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며 물질적 유산은 바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1992년 한경직 목사가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을 당시 상금 102만 달러를 고스란히 북한 선교를 위해 헌금한 것을 예로 들며 아버지가 남긴 물질보다 위대한 영적 유산을 감사해 했다.
강병훈 목사 (추양재단 이사장)는 한경직 목사가 마치 ‘양파’와 같이 겉과 속이 똑같은,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존경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고 임정산 은퇴장로는 “한경직 목사님은 은퇴 후 남한산성에 위치한 사택에서 두 평가량의 방에서 침대와 이불장만 놓고 생활했다”며 마지막까지 청빈하게 살았던 한경직 목사의 삶을 증언했다.
“한 목사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 일생에 있어서 한경직 목사님을 가까이 뵙고 모실 수 있었다는 게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추양 한경직 목사’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과 고백이 담긴 부활절 특집 1부 “한경직 목사의 삶을 말하다“는 CBS TV <멘토,길을 묻다>에서 4월 17일 방송됐다.
방송은 스카이라이프와 각 지역 케이블을 통해 시청할 수 있으며
이후 페이스북, 유튜브 등으로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