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안은 대대로 부처님을 섬기던 불교 가정이었습니다. 6남 1녀의 형제들 사이로 두 올케가 복음의 씨앗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당시 저희 가족은 너무나 가난했고 몸마저 아파 누구도 예수님을 영접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 성실한 남편을 만났지만 가난은 여전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며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행을 권하셨습니다. 쥐어줄 돈이 없다며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뒤로하고, 저희 부부는 결혼 금반지 6돈을 판 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며 고된 삶을 이어갔고 다행이도 집을얻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동안의 고단함을 잊으려는 듯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던 제게 동네 언니는 "걱정 말고 교회에 가보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처음 가본 교회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함이 있었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마음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당뇨가 찾아왔고 병원 치료에도 차도가 없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편을 설득해 6개월간 함께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생계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저희의 믿음은 뿌리 내리지 못했고, 발길은 다시 뜸해졌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악재가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의 사업은 무너졌고, 산 지 얼마 안 된 새 차를 폐차하는 등 마음 고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절에도 가보고 점집도 찾아다녔습니다.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새벽 예배도 드려보았지만, 깊은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엔 제 믿음이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에게 통풍까지 찾아왔습니다. 동네 병원을 거쳐 간 큰 병원에서는 "너무 늦었으니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렸습니다. 남편은 절단만은 안 된다며 약으로 버텼고,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의 고통도 살을 에는 듯했습니다. 다행히 10년간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남편은 허약하게나마 제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짧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일을 나가기 전 식사를 차려주려 남편을 불렀는데 숨 가빠하던 남편은 심장마비로 허망하게 제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저는 삶의 의지마저 놓아버렸습니다. 자식들은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저는 남편의 빈자리가 휑한 집안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 사무치는 외로움과 절망의 끝에서 제가 다시 붙잡은 곳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압니다. 그 수많은 고초가 저를 이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음을요. 이제 저는 매일 새벽 제단을 쌓으며 꾸준히 기도합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개와 남겨진 가족들의 행복, 그리고 영혼의 안식을 간구합니다.
모진 풍파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만난 예수님. 이제 그분의 품 안에서 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손자입니다 할머니의 글을좀더 잘 전달될수있게 조금 다듬고 이글을 올렸습니다 할머니께서 이글을쓰시면서 또 읽으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는모습을보며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간증 신청자중 한분이실지모르나 부디 저희할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방송도 몇번 출연하신적이있고 말씀도잘하시는분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