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마주하는 일보다
풍경과 마주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도시의 소음을 누가 좋아하랴마는 일상의 그늘을 벗어나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자연이 공급하는 위대한 생명력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래서 '떠난다 떠난다' 하면서도 정작 도심 한복판의 콘크리트 둥지 안에 있는 것이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떠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두니 잠이 오지 않는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5시 30분, 아이 깨우고 아침밥 안쳐놓고
화장을 하는 둥 마는 둥 뛰다시피 해서 겨우 서울역행 삼화고속버스를 탔다. 그런데 태생이 그런 것인지, 운전 기사님, 안전운행의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한가한 고속도로 위에서 제한속도를 끝까지 지키는 저 멋지다 못해 무모한 용기라니...
신촌에 도착하기까지 수십여대의 차를 보내고도 모자라 노란 신호에서도 결코 건너는 법이 없다.
결국 충정로에 즈음했을 때는 7시가 가까워지고 조급해진 나,
시계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니 비로소 백미러로 내 눈치를 살핀다.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코레일 여행사 직원이다
열차 출발하니 청량리에서 7시 37분 차를 타란다.
그러면서 차량과 객실 좌석 번호를 불러준다.
그때부터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행 전철을 타고 다시 내려 아우라지행 기차를 타기까지...
긴 신호음과 함께 청량리를 출발한 새마을호 관광열차는
가족, 혹은 친구와 연인 등 정선 관광을 나선 사람들을 가득 싣고 미끄러지듯 여름 풍경을 가로지르며 레일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사진 찍으며 까르르 웃음과 수다를 떨며
3천원짜리 턱없이 비싸면서도 맛없는 냉커피를 마시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명숙과 명숙 2세, 이 철없는 모녀는 5시간 내내 열차 안에서 잠도 안 자고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남에게 피해 안 가게끔 조용+조신하게 말이다->이게 가능할까마는?^^)
정선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14분 쯤. 곧바로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오일장으로 향했다.
자원봉사 안내자의 말에 따라 도착하자마자 일단 정선에서만 나는 특색음식인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와 올챙이국수, 황기백숙 이 네가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다 곤드레나물밥 시켜 게눈 감추듯 비벼먹고 약간 모자란 듯 싶어 메밀 전병을 시켜 먹었는데 그닥 맛이 없는지 명숙 2세는 한 개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결국 6개 중 3개를 남겼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부터 장구경이다.
재래시장을 잘 정돈해 질서정연한 모습의 장 풍경은 활력, 그 자체다.
더위가 기승인데도 한결같이 밝은 표정의 상인들, 그리고 열심히
장구경을 하면서 물건값을 묻고 또 흥정하고..
곳곳에 눈에 띄는 나물 말린 것과 수북히 쌓여있는 황기는 이곳이 정선임을 환기시켜준다.
신나는 음악소리에 홀리듯 따라가보니 장 한켠 무대가 설치돼 있고
젊은 마술사가 나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1시간 30분 간 장 구경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버스로 40여분 동안 이동해 도착한 곳은 구절리역이다.
메뚜기 한쌍이 겹쳐진 형상의 카페가 들어선 그곳엔 레일 바이크를 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린 다행히도 예약이 되어 있어 그냥 타기만 하면 됐지만 그곳은 새벽에 나와 예매를 해도 그날 타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단다.
뙤약볕에서 10여 분 간 기다리다보니 드디어 출발이다.
더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계곡물을 따라 달리다보니 세상에 이리 시원할 수도 없다. 게다가 구절리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을 달리는 동안 오르막길은 없고 거의 내리막길이어서 노약자나 어린이도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탈 수 있게끔 되어있는데 철없는 엄마는 페달 밟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일렬정대로 서 있는 옥수수밭을 보며 감탄하기 바쁘고 계곡물과 어울어져 초록을 한껏 뽐내는 풍경에 취해 꺄오, 환호성을 지르기 바쁜 것과는 달리 그래도 앞뒤 간격을 맞추겠다고 브레이크와 페달을 열심히 밟는 명숙2세는 투덜투덜~ 그 모습이 예쁘고 귀여워 세 번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 시원함과 어두컴컴함을 이용해 뽀뽀하자며 달려들었더니 징그럽다고 고개 돌려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웃음)
시간여 가까이 오다보니 어느새 아우라지역,
정말이지 그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환상적이다.
곳곳이 여름 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그 풍경에 취해 오다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버리고 만다.
도착하니 코레일 남자 직원이 서 있다가 바이크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며 자매분들 즐거우셨습니까? " 한다.
그러자 명숙2세 벌써 세 번째 듣는 소리라며 안 그래도 잔뜩 나왔던 입이 서울역까지 나와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정선군으로 나가 민속공연을 보았다.
아이는 별 흥미가 없는지 연신 하품하기 바빴지만
어른들은 연신 박수치며 어깨까지 들썩이며 어린 아이들처럼 즐거워하신다. 극공연 관람을 끝으로 아쉽게도 하루 일정이 속절없이 지나버렸다. 버스를 타고 다시 정선역으로 와 기다리고 있던 관광열차에 오른 시간은 6시, 내가 왔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도시를 향해 기차는 아침과 달리 더욱 힘차게 레일 위를 달린다.
정선이, 강원도 땅이 멀어질수록 햇살이 점점 색깔을 달리한다.
어스름녘, 해가 숨은 시간, 피곤한지 아이는 그대로 곯아 떨어진다.
외려 맑아지는 눈은 자꾸 차창밖으로만 향한다.
오늘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버릴 그리움의 이 순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웃어야겠다는 생각,
더욱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PS: 윤희님,서 피디님!
이토록 환한 날, 생의 한자락 별빛보다 곱고
햇살보다 눈부신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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