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대합실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기차시간표를 연신 바라보는 그네들의 얼굴엔 만면 웃음이
가득하고 고향을 그리는 눈빛은 별빛처럼 빛났습니다.
3시간 30분 여..
도착한 시댁엔 형님네와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누네까지 와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북적이고
도착하기 무섭게 형님과 함께 장보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저녁상을 물리기 무섭게 앞치마를 두르고
찬거리 다듬고 씻고 데치고 볶고 무치고....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들른 다음,
마지막으로 황간에 계신 왕고모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아이들에겐 여든다섯이 넘은 할머니가 경상도 말로
"증조 할매'로 불리워집니다.
구부정한 허리, 검은 머리카락이라곤 찾을 수 없는 하얀 머리카락.
얼굴 가득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매...
봄에 뵈었을 때보다 더욱 쇠잔해지신 할머니는
여러 손주들이 우르르 와 시끌벅적한 집안에 모처럼
꽃이 피었다며 환히 웃으셨습니다.
기력이 쇠하긴 하시나 거동에 별 불편이 없으신 할매는
올해도 여전히 송편을 빚고 울타리마다 심은 옥수수며 호박 등.
거둬들인 알곡들을 사랑채와 헛간에 쌓아두었다가
조금씩 나누어주셨습니다.
마늘 50여통, 그리고 늙은 호박 몇 개와 서리태 한 되가
전부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힘들게 농사지은 것인줄
너무도 잘 알기에 한번 사양이라도 할라치면
금세 노기 띤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세상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여~ 어여 받어!"
귓전을 우릉우릉 울리는 호통에 형님과 저는 여전히 눈치만 살피고
아버님과 아주버님은 "잘 먹겠습니다. 고모님~"
합창을 하십니다.
하룻 저녁쯤 자고 가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길을 나서는 저희들의 등을 차례대로 한번씩 죄 어루만지며
"이제사 가고나면 내년에 또 볼랑가?" 젖은 음성으로 발목을 붙잡습니다.
"할매여, 다음 구정 때 또 올께예~"
충청도가 고향인 나는 할매를 붙잡고 친정 할매 생각에 눈물콧물이 되어서 고모할매를 꼭 한번 안아보았습니다.
새처럼 파닥이는 가슴, 조금만 힘주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것 같은가슴속에서 느리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듣습니다.
어린 날, 그랬지요.
엄마의 품, 혹은 할머니 품에서 잠들던 그 저녁 한 때...
어둠 속으로 곱고 맑게 빛나던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내 어린 날 밤은 그렇게 저물었드랬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나는 왜 내 고향에 가지 못하고 늘, 언제나 이렇게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기대어 울음우는 걸까...하고 말입니다.
유난히, 고향이 그리운 밤입니다.
또 이렇게 깊어가는 어둠,
홀로 잠드는 나무들처럼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내내 서서
그리움만 삼키며 내 고향 쪽만 바라봅니다.
이동원 박인수 /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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