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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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반컵.
이종우
2007.05.20
조회 57
안녕하십니까? 또 오랜만이죠?

오랜만에 오니까 메인 화면도 바뀌어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포토샵처리한 사진을 별로 안좋아해서요. 지금 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제가 제목을 저렇게 단 이유는 '군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10년전... 그러니까 1997년 5월 20일은 제가 군에 입대한 날이거든요. 아직도 꿈 속에서 훈련을 받고, 예비군복과 전투화가 저에게 있고... 하여튼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정확히 10년의 시간이 흘렀군요.

저도 군대얘기를 한다면 다른 예비역처럼 2박3일은 걸릴겁니다. 대부분은 힘들었던 이야기이죠.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군대는 군대입니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를 잘 묘사하는 것이 바로 군대에서 사병의 위치일 것입니다. 군대에는 여러가지 보급품이 있습니다. 1종-14종인가로 나누는데, 중요한 순서에 따라서 1종이 쌀, 2종이 피복... 이런 순서로 나갑니다. 제일 마지막인 14종이 바로 '사병'입니다. 우리가 먹는 의식주나 무기만도 못한 것이 군인이죠. 전시에 죽으면 바로바로 보급할 수 있는.... 지금 우리 병사들은 쌀이나 군복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도 그랬구요.

2년 2개월. 요새는 줄어서 2년이죠? 그 2년동안 매일 짜여진 시간계획, 똑같은 두발과 옷을 입고 '의무'라는 명목 아래 쌀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삽니다. 참 암울하죠?

하지만... 하지만 저에게 그 2년 2개월과 지금을 비교하면 차라리 쌀만도 못한 대우를 받던 2년 2개월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2년 2개월이 지금 저를 살게 해주는 원동력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군 복무로 인해서 잃은 것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없더군요. 오히려 얻은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단...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원래 저는 175cm가 안되는 키에 몸무게는 90kg가까이 나갔었죠. 그런데 제대를 할 때 목욕탕에서 몸무게를 재니까 67.5kg이 됐더군요. 일단 고도비만이라는 병은 완쾌되었다고 보면 되겠죠? 물론 몸무게는 이제 많이 불었지만, 해발 3000m가 넘는 안나푸르나 전망대도 2박3일동안 올라가고, 마라톤 3회 완주를 할 정도로 체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아마 뒷산도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감과 근성도 많이 생겼습니다. 몸이 뚱뚱하다보니 왠지 자신감도 없었고, 특히 운동 등을 할 때 늘 뒤에 숨어서 볼만 주워주곤 했지요.제가 첫 행군과 두 번째 행군을 했을 때 항상 낙오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두번째 행군 때는 발바닥의 살갖이 벗겨져서 양말속에서 살점을 찾아내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세 번째 행군부터는 너무나 쉽게 행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살도 많이 빠지고 하니까 자신감이 붙게 되더군요. 제가 선임병이 되었을 때 저와 똑같이 뚱뚱해서 행군에서 낙오하려는 후임병이 있더군요. 그 후임병 군장을 들어주고 끌고 당기면서 같이 행군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원래 운동을 하도 못해서 중고등학교 때 체육 점수가 참 안좋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운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계급(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서 운동도 마음대로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이 되어서 레이업슛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체육대를 나온 후임병을 개인교사로 앉히고 열심히 레이업슛을 연습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안됐는데,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생각하니까 레이업 슛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농구기술이 다 되기 시작하더군요. 결국에는 우리 부대에서 가끔 농구시합선수로도 나갈 정도가 되었죠. 그러다보니 태권도 단증도 따게 되고, 태권도 조교도 하고... 그렇게 되더군요. 요새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레이업슛 연습할 때 기분으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덤비니까 대부분 다 되더군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군입대하기 전까지는 저는 저만 알았고, 조금만 틀리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 났거든요. 막상 내 잘못은 모르면서...
군대에서 선임병들한테 기합도 받고 맞기도 하면서, 서럽기도 많이 서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제가 그런 것을 해야하는 위치가 되더군요. 그 때 퍼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는 맞으면서 군생활 했지만, 내 후임병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말게 해야겠다.'고... 그러면서 내가 사회 있을 때 얼마나 내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탓만 했는지 생각나더군요.
결국 제일 선임병이 되어서 저는 장교한테는 맞아도 제 후임병은 절대 때리지 않게 되더군요.

참고 인내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아무리 선임병들이 불합리하고 좋지 않게 행동해도 제가 하극상을 하게 되면 제 인생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선임병이 되었을 때 후임병 하나가 저를 너무나도 답답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때릴 순 없고... 그런 와중에 저도 모르게 앞에 있는 책상을 제 머리로 받아버렸습니다. 책상에 깔려있던 유리가 박살이나고, 제 이마는 찢어졌죠. 자초지종을 들은 간부가 제 봉급에서 유리값을 깎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잘 참았다고 포상휴가를 보내주더군요^_^
그렇게 참고... 또 참고... 하니까 어느새 제대를 하게 되더군요. 더불어서 참을 때와 화를 낼 때, 그리고 잘 화내는 법도 조금씩 배우게 되더군요. 그 때 배운 것이 지금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많이 싸웠고, 부모님과 사이가 정말 안좋았거든요.
추석 때 야간 경계근무를 하는데, 그 날따라 추석 보름달이 너무나 밝더군요. 그 달을 보니까 새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뭐라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감사함이 밀려들더군요. 굳이 글로 표현하면... '아, 내가 여기서 빡빡 구르고 있으니까 부모님과 친구들이 저 달을 보면서 송편을 먹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제가 그 동안 잘못했던 일들도 많이 후회스럽게 되고 그렇더군요.

이 방송을 애청하는 많은 후배 장병여러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참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화천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잡히는 라디오방송이라고는 국방방송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라디오 청취는 금지되어 있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백령도 해병대에 있어도, 마라도 의무병으로 있어도 군대는 다 힘들다.'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장병께 말씀드립니다.

물 반컵. 많이들 얘기하죠? '반컵이나 남았네?'와 '반컵밖에 안남았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고... 그냥 물 반컵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행군할 때 남은 물반컵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만큼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저 이 격언 매우 싫어합니다. 애시당초 피할 상황을 안 만들면 되는데... 아마 저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사람일 것입니다.

후배 장병여러분께 즐기라고 말하고 싶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하루하루를 여러분께 피해가 가지 않게 사시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2년... 금방 갑니다.

그리고 더 긴 세월이 지나면... 형체는 남아있지 않지만, 내 몸속 어디에선가 나를 살아있게 도와주는 한 끼 식사처럼... 군생활도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좋은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신청곡은... 군대와 관련된 노래 중 가장 긍정적인 노래로...

김원준, 세상은 나에게.
김광석, 이등병의 편지.

나...

봄여름가을겨울,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토이, 스케치북.

신청합니다.

추신.

윤희님이 나온 학교(경_대학교 국__계학과)를 나온 저보다 한 살 어린 두 달 고참이... 저를 참 많이 때렸습니다. 지금도 회기동 근처에 놀러가면 '이 인간 언제 잡히기만 해봐라!' 그러면서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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