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이 심심할 때 주전부리를 하는 것처럼
눈이 심심해지면 오래전 읽었던 책을 꺼내 읽는 버릇이 있다.
갈색으로 변색된 책 한 권이 책장밖으로 주둥이를 내밀며
'오늘은 나를 읽어줘.' 한다.
표지를 거둬내고 첫장을 넘기자 기억의 열쇠라도 되는냥 날짜가 쓰여있다.
- 구구년. 일월. 삼일. 혜화동.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혜화동에 있는 서점에서 구입한 모양이다.
미리 준비한 쓰디쓴 블랙커피를 주스처럼 홀짝홀짝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섹션마다 붙여진 제목, 첫 문장, 등장인물... 모든 게 낯설다.
건망증 3기내지 치매가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당황케 한 건 따로 있었다.
문장 아래 연필로 그어 놓은 밑줄과 책장 모서리를 야무지게 접어놓은 흔적들.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밑줄을 친 거지?'
모서리가 접혀 있는 책장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이유를 모르겠다.
'왜 이 페이지를 접어 놓은 거지?'
모든 게 기.억.나.지.않.는.다.
시간의 기원은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당황스럽잖아?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기억의 기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억의 기억이라도 꺼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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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곡
마이앤트메리 - 기억의 기억
After All - Al Jarreau
Inger Marie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Sting- Moo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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