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주경심
2009.01.21
조회 48




남편과 아이가 발리로 여행을 떠나는 아침...

공항에서의 미팅시간을 맞춰야했기에 첫닭도 울지 않은 새벽4시에 눈을 떠야했다.

평소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불러도 초지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던 아이도 그날만큼은 군말없이 일어나 세수를 했다.

"어때?"

"졸려요~~" 너무 당연한걸 물었나보다.

그래도 군말없이 옷을입고 나서는걸보니 졸림 이면에 기대감과 설렘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차를 몰아 리무진정류장으로 갔는데, 리무진이 오자마자 냅다 뛰어가며 "엄마 안녕~~"하는데

새벽바람보다 더 휑한 기운이 내 마음을 훑고갔다.

'잘 지내고 와야할텐데....'


지금부턴 여행을 떠난 남편의 일기를 바탕으로 발자취를 따라가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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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탔다.

내 평생에 이렇게 긴 비행은 다시 없을것같다.

마치 비행기를 빨아들이기라도 할듯 올라갈수록 더욱더 끝간데 없이 높게 펼쳐진 하늘이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경이로움도 잠시 새벽에 일어난 탓에 금세 잠이 들고 말았다.

아내가 꼭 비행기 안에서도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는데...

꿈속에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는데, 깨어났을때 카메라는 여전히 가방에 얌전히 들어있었다.

'올때 찍지 뭐...'

정말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지문이 닳도록 셔터를 누르려고 했는데...

여독때문인지 아니면 비행기 체질인지 이륙과 동시에 잠이 들어버렸다.



많이 더울꺼라는 우려와는 달리 지금이 우기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햇볕이 구름새로 비치면 남태평양의 작렬하는 태양맛을 톡톡히 느낄수가 있었다.



미라지 호텔은 마치 작은 성을 연상케했다.

케익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지붕하며, 어느 한구석도 소홀함 없이 잘 꾸며놓은 실내하며...

좋은 것을 보면 함께 하고픈 사람이 생각난다고 했던가?

순간 일하고 있을 아내와 "아빠 꼭 선물사오셔야돼요"하던 딸아이가 생각이났다.

봤다면 분명 아이처럼 좋아했을텐데...

하나에서 열까지 다 카메라에 담느라 호텔이 들썩들썩 정신이 없었을텐데..

저녁 식사후 잠시 타국의 정취에 취해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베사메무쵸"

음악소리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와보니 창문밖으로 높이 자라있는 야자수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듯 흔들리고 있엇다.

때마침 내리는 강한 소나기는 더위를 한 풀 식혀줌과 동시에 또 하나의 장단이 되어주었다.

저 멀리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 떠있는 배 세척이 보였다. 도대체 무얼 잡는걸까?

휴양지 발리에도 자기 삶을 묵묵히 지켜가고있는 성실한 어부도 살고있었다...



본격적인 관광은 둘째날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주 커다란 배(크루즈호)를 타고 스노클링과 해양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우사루사라는 섬으로 가는데, 가끔 보던 바다였건만 발리의 바다에는 시퍼런 물비늘 대신 낭만과 사랑이 일렁이는듯 했다.


아내는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고 했지만, 순간 기록보다는 기억에만 두고픈 욕심이 나서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어가면 아내는 틀림없이 다 봤다며 아내와 함께 꼭 다시 발리에 오고싶은 내 마음을 묵살해버릴테니 말이다.

그 사랑과 낭만이 배멀미로 바뀌는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발리가 멋있어도, 아름다워도, 바다가 나를 품에 안을듯 달려들어도 멀미는 어쩔수 없었다.

나는 어른이니까 그렇다쳐도 아들이라도 멀미약을 먹이는건데....

아내가 알면 틀림없이 노발대발할 일이기에 아들과 크루즈호의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을 했다.

(여기서 우사루사란 두개의 섬이라는 뜻인데, 발리에서는 뭐든 보이는 대로 가식없이 이름을 붙여놓았다.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삐쭉삐죽한 털이 나있는 열매의 이름도 랑부땅. 한국말로 머리카락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모든걸 다 포기할수는 없어서 항아리처럼 깊게 파인 반잠수정을 타고 바다생물을 구경했다.

고기가 나를 보는건지. 내가 고기를 보는건지...

삶에서 잠시 놓여난것뿐인데, 마치 아이가 된듯 모든것이 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구경을 하고 다시 크루즈호로 올라오니 작은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멀미때문에 꼼짝 못하던 아들녀석이 현지 가수가 한국 관광객을 위해 부른 아파트, 어머나, 아리랑 노래에 눈이 말똥말똥 해지며 큰 소리로 따라불러서 잠깐 창피했었다.

'차라리 멀미할때가 조용하니 좋았는데....'



셋째날은 어제 하지 못했던 해양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가 있었다.

바나나보트는 신났고, 제트스키는 몸안에 있는 모든 스트레스를 다 날려주는듯했다.

태평양 한 가운데를 뚫고 달리는 기분은 "모세가 따로있나?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내가 바로 모세지.."싶을 만큼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신나게 즐기고 나니 저녁에는 호텔을 통째로 뜯어 먹으래도 먹을수 있을것같았다.

그래서 이탈리안 식당으로 갔는데, 이런 낭패가..

긴 바지를 입어야 들어갈수 있다는게 아닌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나와 아들은 잠시 허기를 접고 다시 긴바지로 갈아입어야 했다.

발리에서 먹는 이탈리안 정통 식사...

어느것인들 맛이 없을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이탈리안 정통식사는 최고라고 할수있었다.

바지를 갈아입어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먹어보라고 권하고싶다.



드디어 마지막날...(사실은 엄청 아쉬웠음)

울루와트 사원으로 갔다.

울루와트 사원은 말 그대로 절벽바위위에 자리한 사원이었다.

고즈넉한분위기에 한껏 달떠있던 휴양기분을 잠시 달랠수가 있었다.

저절로 모아지는 두손에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보았다.

사원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태평양은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처럼 언제든 나를 위해 그 너른 가슴을 열어줄것이다.

고민도, 아픔도 하얀 물거품으로 승화시켜버린채

희망과 꿈을 되돌려주는 발리의 바다...



사원 뒤편으로는 원숭이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베컴머리를 한 원숭이를 만났는데...어찌나 귀여운지 한마리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섣불리 건드렸다간 원숭이만의 객기와 맞딱드려야 할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마지막힘을 내서 피니쉬라인에 들어오듯

나 역시 비행기 시간을 몇시간 앞두고 셔터를 열심히 눌렀다.

그런데 누를수록 가슴한켠이 허전해 지는건...아마도 다시 오고픈 갈망때문이리라..



떠나기 전만해도 "집 나서면 고생 길"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물론 몸은 힘들었다. 어린 아들 챙기는것도 힘들었고, 몇시간 상간으로 추위와 더위에 적응을 해야하는 나의 무딘 신경도 힘들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영어를 못해도, 돈이 없어도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지고, 신나는 일이었다.
영어보다 더 강한 언어가 바로 웃음이고, 돈보다 더 강한 여비는 바로 즐길수 있는 마음이기때문이다.

그러니 난 또 기회가 닿는다면 여행을 갈것이다. 아니 이제부터 여행의 기회를 만들어가며 살것이다.

여행은 돈을 쓰고, 사진을 찍는 단순행위를 떠나

세상의 잣대에 쉽게 흔들리며 괴로워하는 내 영혼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정확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지금껏 열심히 살았다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열심히 일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서...

여행은 필요충분조건이란걸 알게된것이다.


사실 내 아내가 이쁜줄, 착한줄, 고마운줄 모르고 십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내 아내가, 내 집이 얼마나 고맙고 또 좋은곳인지 새삼 알게되었다.



이번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기억은 감사이고, 가장 값진 기록은 낭만이다. 그리고 발리를 알게된것이다.

발리의 하늘, 바다, 그리고 꿈..
또하나의 발리가 되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곳에 한걸음 더,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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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조작이 서투른 남편때문에 사진이 3년전으로 찍혀있네요...
너무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하네요.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었다고 꼭 인사도 드리라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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