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 세 살이 넘을 때까지, 영화관에 가도 노래방에 가도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정말 기분 나빴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어려보이나. 숙녀처럼 보일려구 정장으로 쫙 빼입고 노력을 했는데.
애 취급 하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어리다고 무엇이든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십 초반에 사십대가 입을법 한 의상을 즐겨 입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이십초반에 입었어야 할 옷에 눈독을 들이게 됩니다.
삼 년 전 쯤인가? 모자쓰고 멜빵바지를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아주 젊은 아저씨가 저한테 그럽니다.
"어이 학생! 거기 창문좀 닫아주지!"
어렸을 땐, 누가 반말을 하는 게 너무 싫어서 왜 반말로 하느냐고 따졌었는데, 저는 미소를 지으면서, "네~~~"
기분이 좋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죠.
'얼마든지, 누구든지, 하루종일 창문 닫으라 명령해도 닫아준다.'
저는, 누군가가 다시 학생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면 한사껏 "노!" 라고 말합니다.
지금 현재의 내가 좋습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늙었을 때, 예쁜 할머니가 되어있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나, 삶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에서 끄집어 낼 때, 참 좋은 사람이었지 한다면 인생 성공한 사람이겠죠.
주위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그 사람들 보다는 나이에 맞게 적당한 눈 주름과 이마의 주름살이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겉 모습만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감추어 지지는 않습니다.
사십대 이상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얼굴은 곧 마음 이니까요.
저는, 세 살 어린아이 앞에서는 세 살이 되어 있고, 중학생 앞에서는 중학생의 눈 높이가 됩니다.
내 관점에서 그를 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생각과 입장이 되어 줍니다.
다섯 살 어린이부터 칠,팔십 되신 어른들과의 대화가 흥이 납니다.
그 결과, 저를 좋아하는 팬들을 아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행복합니다.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죠. 그 분들이 많이 고맙습니다.
어제 새해 첫 날~
한 분의 회원이 '영재야' 라고 글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첫 날 까지 그렇게 해야 했나,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누구야 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만큼 젊다는 것 일테니까.
그냥 기분 좋게 넘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빠~
그 분 보다는 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2009 두번 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날에 못다했던 좋은 말씀들 전해주시길 바래요.
당신이 너무 좋아요, 그 노래 나리라보다 더 좋아요. 천 번을 해도, 들어도 기분 좋은 말, 당신이 너무 좋아요.
유영재의 가요속으로 스티커 한 장, 저거 하나는 제가 사용할 것인데 운전을 못해서 올해까지는 더 모셔 두어야 할 듯 합니다.
저기 위의 행운의 노란, 차량 스티커 붙이고 다니고 싶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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