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할머니의 '가죽 자반' 솜씨
가요속으로
2008.05.26
조회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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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sh2010717)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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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저희 할머니께서는 26년 전에 여든 일곱살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할머니의 정갈한 손맛은 제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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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얌전하고 가정적인 분이라 그 모든 음식을 깔끔하게 하셔서 다 맛있었지만,특히 그 중에서도 제일 잘 하시고 지금은 그 어디에 가도 먹을 수 없는 '가죽 자반'이란 걸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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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본가는 경남 진양군이었는데,이 가죽 나무라는 건 북방한계선이 있어서 아마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에 해당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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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서울에서는 이 음식을 해 먹기 어렵고, 지금도 경동시장에 가면 가죽은 팔기에 사와서 고추장에 버무린 가죽 장아찌는 맛볼 수 있지만, 이 역시 가죽 나물값이 비싸서 자주 사 먹기엔 쉽지 않지요. 그래도 가죽만의 독특한 향기에 반해서 저희 큰오빠와 저는 김치 대신 가죽 고추장 장아지찌만 먹고 살았으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고 한답니다.
>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가죽 자반>에 대해서 소개해볼까요.
> 우선 한 명은 고추가루, 후추, 마늘, 생강, 소금 등등 갖은 양념을 넣은 찹쌀풀을 마침 맞게 끓여서 대기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울타리 안의 가죽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서 잎사귀가 처지지 않게 잘 씻어서, 미리 준비한 매운 찹쌀풀로 여러번 옷을 입힌 후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이 <가죽 자반>이라는 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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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뒤 꾸득꾸득 제대로 마르면 채반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놓아두고 반찬을 해도 좋고, 술안주나 군것질로 먹어도 맛있어요.
>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가죽 자반에 참기름을 발라서 불에 톡톡 터질 때까지 구워서 바삭바삭 고소하게 먹어도 좋지요.
>
> 시골에서 할머니가 커다란 상자에 한 가득 해서 보내주시면 우리 어머니는 참기름 발라서 고소하게 구워 밥상에 내놓곤 하셨어요.
> 근데 우리 큰오빠와 저는 그것보다 약간 말랑하고 촉촉한 맛 그대로의 가죽 자반을 군것질로 먹는 걸 가장 즐겼습니다.
>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이미 오빠는 고교생이라 학교에서 늦게 왔지요. 오빠는 등교하면서 꼭 제게 당부합니다.
> "혼자 먹지 말고 오빠 오면 함께 먹자."
> 전 그러면 먹고 싶어 죽겠어도 벽시계를 보며 큰오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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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는 잎사귀가 다 쳐져서 장아찌나 만들지, 자반은 할 수 없다는 어머니 말씀에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추억의 음식 <가죽 자반>이었는데, 마침 이렇게 유가속에서 <맛>에 관한 이벤트를 하는 덕에 오랜만에 우리 할머니의 곱고 정갈했던 그 특유의 향기로운 음식 <가죽 자반>을 회상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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