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속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조용하던 골목도 수런대며 일어서고
장을 다녀오는 아주머니 발길은 점점 바빠지고,
방앗간의 기계는 쉴 새 없이 가래떡을 뽑느라 정신없었지요.
동네 초입에 일백 살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마저 한껏 팔을 벌리곤
고향을 떠나있던 핏줄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모습을
제일 먼저 반겨줄 정도였으니까요.
설 명절이면 집집마다 나이차가 나는 언니 오빠들이나
미혼인 삼촌이나 고모를 둔 친구들에 비해 맏이였던 제겐
맛있는 과자며 사탕 따위, 혹은 설빔을 사들고 올
고모나 삼촌이 안 계셨어요.
아니 고모님이 두 분 계시긴 했죠.
그러나 스물이 되기도 전에 대전으로 시집 간 큰고모는
일 년에 한번 할아버지 제사 때 오시곤 했는데
무척 엄하신 분이라 늘 어려웠고
서울에 사는 작은 고모님은 갓 결혼한 새댁이어서
명절이 돼도 시댁이 너무 멀어서 친정에 들렀다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웬일로 작은 고모님이
오셨더라고요.
그것도 그토록 소원하던 설빔을 사들고 말이죠.
진분홍 바탕에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과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썰매와 나무들로 수놓아진
멋진 스웨터였어요.(독고리라 했죠, 그땐)
무척 야위고 하얀 피부였던 저와 동생은
서로 입겠다고 싸우고 결국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저, 그때부터 그 옷만 입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동네방네 자랑자랑~
그리고 개학을 했는데 지금은 아련한 제 첫사랑이 된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명숙이 옷 참 예쁘다, 흰 피부하고 참 잘 어울려”한 마디 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
보풀은 기본이요, 올이 풀리고 자주 세탁해 팔부분과
아랫단 부분이 할아버지 너털웃음처럼 늘어지도록
입고 다녔지 뭐예요.
결국 그래서 얻은 별명이 ‘분홍이’
향단이도 아니고, 꽃님이도 아니고
분홍이? 아, 그 촌스런 별명이라니~
아무튼 요즘도 심심찮게 목 폴라 스웨터나
멀리서 한눈에 눈에 띄는 진분홍, 분홍 옷을 입은
여자 아이들을 보면 제 어린 날, 그때를 보는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분홍색은 그래서 여자 아이들만의
상징색인 것 같아요.^^
그렇죠? 보라색이 무척 잘 어울리는 영재님~^^
강수지/ 보랏빛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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