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어느해 겨울 설날 이야기
조은비
2008.02.03
조회 22
제 나이도 삼십대를 지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마흔을 향해 정신없이 흐르는 지금,
해마다 돌아오는 민족 최대의 설 명절이면 떠오르는
웃지못할 추억 하나가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합니다

함께 가보실래요?

때는 이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봄동처럼 파릇한 젊은 미소가 넘쳐나던 시절.
눈 하나 작은 것빼면 흰피부에 가지런한 치아가 살짝 보이던 미소가 제법 예쁘던 열일곱 나이 때입니다.

설 명절이면 객지로 떠나가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는데
우리집엔 아버지한테 형제가 없어 어리광 부리고 설빔을 사다 주실
삼촌도 고모도 한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조용하고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야 했는데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이웃집에 사는 상철오빠를 기다리는 일이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는 오빠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에 와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모습은 정말 멋져보였습니다.

그해에도 어김없이 상철오빠는 고향에 내려왔고
쓰잘데없이 갈 일도 없으면서 이웃집에 심부름 시킬 없냐며
엄마한테 물었다가 구박만 받고...그러다 응달진 논배미에 썰매를 타러 갔는데 거기에 상철오빠와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홍당무가 된 저는 평소 그렇게 잘 타던 썰매를 타다 넘어지기 일쑤고
엉뚱한곳으로 가길 여러차례..그러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지요.
괜시리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썰매를 들고 황급히 논을 벗어나다
그만, 살얼음이 껴있던 곳을 밟아 발목이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그날 저는 얼음장 밑으로 빠진 발을 빼내기도 전
달려온 상철오빠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괜찮니? 이런 춥겠다 어여 집에 가자~' 하면서 저를 일으켜주고
집까지 함께하면서 창피한 마음에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채걷는데 어찌나 심장소리가 크던지요? 쿵쾅쿵쾅~
미리 설빔입혀 내보냈더니 금세 옷 버렸다고 부지깽이로 맞고 혼은 났지만 저는 실실 웃고만 있었네요.

그후 상철 오빠는 몇년뒤 예쁜 서울 아가씨를 데려와 저의 꿈을 무참히 깨버렸고 그날 이후 기다릴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누군가를 기다리며 설렘을 가졌던 행복한 설날의 풍경이 지금도 제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늘 행복하고 꺼지지 않는 화롯불 같은 방송 감사드리며
유영재님 민봄내작가님 무자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신청곡 : 블랙펄 - 좋은걸 어떡해
옥슨80 - 불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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