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제가 초등학교 시절의 설날이었습니다.
영하 10도는 족히 될 듯싶은,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느 명절 때나 다름없이 설 바로 전날 어머니가 시장에 가셨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 돌아 오신 어머니의 장바구니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걸었습니다.
아버지의 내의 한 벌, 농구선수인 중학생인 둘째 형의 털장갑 하나, 신문배달을 하던 셋째 형의 털 장화 하나, 다섯 째 동생과 막내 동생의 털실로 짠 목도리 하나 씩 …
끝내 내 몫은 없었습니다.
남자 형제만 다섯이 한 방을 쓰던 시절… 그날 밤, 난 그 좋아하는 만화책도 읽지 않고 초저녁부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서운함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왜 엄마가 내 선물은 사지 않았을까?”
“난 정말 다리 밑에서 주어온 것일까?”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붙고 어제 시장에서 사오신 닭 한 마리를 넣고 삶기 시작 하셨습니다. 불을 피우고, 장작을 넣어 불길을 잡아 주는 것은 당연히 내 몫이었습니다. 어서 속히 닭이 푹 삶아지어 푸짐한 아침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지방에 사는 큰 형이 소고기 두어 근을 들고 들어 온 것은 아침식사 직전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여섯… 우리 부모님들이 이북에서 월남하신 터라 친척들이 없기 때문에 명절 때 마다 밥상에 둘러 않는 모든 가족이 고작 이것뿐 이었습니다.
푹 삶아진 닭을 찢어서 몇 조각 씩 넣은 국이지만, 정말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고깃국인지…., 아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 식사 후, 온 가족이 들러 앉아 오랜만에 온 큰 형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는 연신 질문을 하셨습니다.
평소에 과묵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신 것은,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 대한 그 동안의 그리움 때문이란 것을…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아들의 작은 설빔 조차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도, 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고향으로 가지고 갈 선물 꾸러미가 작은 들 어떻습니까.
아니, 빈손인들 어떻습니까.
부모님께 가장 귀한 선물은, 명절에 당신들의 자식의 모습을 보는 것 입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창공을 바라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밝은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은, 내일의 좋은 이야기 거리 입니다.
밝은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십시오.
즐겁고 보람된 설날 명절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설날사연) 아련한 설날의 추억...
이명준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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