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우리집 산타는 택배 아저씨
김용희
2007.12.17
조회 37

해마다 12월 이맘때가 되면 우리집 두 아들 녀석들이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타도 아니고 방학도 아닙니다.
바로 택배 아저씨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때쯤이면 택배 아저씨가 배달해 주신 커다란 박스 안에는
녀석들이 좋아하는 온갖 선물들이 그득했으니까요.
장난감을 비롯한 초코렛, 사탕, 연필셋트, 연필깍이까지...
제 것으로는 목욕제품들, 바디제품들, 티셔츠 등...
그리고, 어설픈 한글로 써 내려간 몇 줄의 카드.
카드의 머리말은 늘 영어로 Hello Sister 아니면 Hi Nephew 였죠.
발신지는 USA.

어릴적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에 저의 5남매는 뿔뿔이 헤어져야 했었죠.
넷째와 막내 남동생이 미국으로 입양 보내진 것이 벌써 24년전 일입니다.
그 당시 여동생은 9살, 막내는 4살이었고 저는 15살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겨우 다닐 수 있었던 저는 동생들을 위해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친척들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동생을 떠나 보냈었죠. 크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위로의 말과 함께 말이죠. 어른이 되면 미국에 가서 꼭 동생들을 데려와 함께 살아야지 하는 마음에 저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보니 미국이란 나라는 제가 맘대로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더군요.
어찌어찌하여 여동생이 제 주소를 알아 내 10여년전부터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고,
7년전부터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선물 박스를 보내오기 시작했죠.

그런데, 7년동안 선물 박스를 뜯어 보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선물 박스 속에는 늘 빠지지 않는 선물 목록이 있었는데, 초코렛과 목욕제품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특히, 초코렛은 몇 달을 먹고도 남을만큼 많은 양을 보내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에는 맛있다고 좋아하더니 어느해부터인가는 시큰둥해 하며
“에이, 또 초코렛이야. 시시해.”
이러는 거였습니다.
미국 초코렛은 한국 제품과는 약간 다르게 맛이 굉장이 달았습니다.
맛이 너무 달아서 몇 개 먹고 나면, 질린다고 할까...아무튼 손이 잘 안 가더라구요.
목욕제품도 종류가 참 다양하더라구요. 비누부터 시작해서 바디로션, 파디 파우더까지.
솔직히 집에서 매일매일 샤워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작년에 보내준것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형부 것이라면서 나이트까운을 보내왔는데, 남편은 집에서 내복입으면 되지 그런거는 뭐하러 입냐며 안 입으려고 하더군요. 거실도 좁은 집안에서 두툼한 나이트까운까지 입을 일이 우리네 정서와는 동떨어졌던 거죠.
동생이 왜 자꾸만 그런 것을 보내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적에 한국을 떠난 동생은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문화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은 세수하듯이 샤워를 하는 나라다 보니, 바디제품이 많이 필요할 것이고
온돌문화가 없는 나라다 보니 두툼한 나이트까운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초코렛을 그렇게 많이 보내오는 까닭은 한국은 아직도 초코렛이 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동생이나 제가 어릴적만 해도 초코렛이란 부잣집 애들만 겨우 먹을 수 있는 그런 진귀한 보물이었거든요.
제가 어릴적에는 초코렛이나 사탕 한번 실컷 먹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없이 많이 했었고, 크리스마스 날 밤에 산타할아버지가 짠 하고 나타나 먹고 싶은 것들이나 한보따리 갖다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꿈도 많이 꿨었지요.

그런 우리 세대에 비해 요즘 아이들이 산타에게 꾸는 꿈은 어떤 걸까 생각해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초코렛이란 것은 없어서 못 먹는 가난함이 아니라, 발렌타이데이라는 상술에 포장되어진 매개체의 역할을 할 뿐이죠.
피자와 치킨에 길들여져 초코렛같은 선물 따위에는 별 반응이 없는 내 아이들을 보며, 올해도 여느해와 다름없이 초코렛을 준비하며 즐거워할 동생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엄마, 미국 이모가 올해는 엠프쓰리 보내주면 좋겠다.”
며칠전 대뜸 이러는 큰애 앞에서, 미국 이모의 향수는 한국을 떠나던 9살 그 시절에 멈춰 있노라고 말해 주면 우리 애들이 이해 할까요?
세상이 변해 미국 이모가 보내오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이젠 시덥지 않게 여기는 우리 아이들을 탓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선물 말고 다른 선물을 보내달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겠지요.
초코렛에 담긴 그 마음이 어떤 것이란 것을 알기에 아이들보다 제가 더 올해는 택배 아저씨가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어쩌다 보니, 저의집은 크리스마스에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산타 아저씨가 돼 버렸네요.
그리고, 어른이 되면 만나 같이 살기로 해 놓고 마흔이 다 되도록 그 약속을 못 지키는 못난 제 자신이 올해는 더욱 초라하고 미워집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 것이고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쓰다보니 글이 점점 길어져 죄송합니다.
만약 제 글이 채택된다면, 조용필콘서트 가 보고 싶네요.
좋은 음악 늘 감사드리며, 행복한 성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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