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지금으로 부터 30여년이 채 되지 않던 해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쯤 됐을까?아마도 저학년때의 일입니다.
제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남한강 물줄기가 가로 지르는 경기도의 한 작은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시골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분주했던 오후의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면, 시골 마을에선 근불(시골엔 늦은 오후가 되면 방안을 따뜻하게 하기위해 불을 지폈었죠!)을 지피느라 굴뚝의 여기 저기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곤 했습니다.
삼삼오오 동네 꼬마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저마다 재미있는 놀이에 열중입니다.
두개의 나무 막대를 이용해 하였던 "자치기"를 비롯한 손바닥만한 호떡처럼 평평한 돌을 이용해 하였던 사방치기라고도 알려진 "먹자놀이"그리고 작고 예쁜 구슬을 굴려 맞치면 따먹게 되는 "구슬치기"등등 많은 놀이 들이 있습니다.
여자임에도 그 많은 놀잇감중에 유난히 "구슬치기"를 즐겨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형형색색의 작고 앙징맞은 예쁜 구슬을 모으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콧물을 질질 흘리며,추위에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 가며 구슬치기하던 그 때의 내 모습이 그려 집니다.
가으내 띄운 청국장을 끓여 놓고,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느라 우리들의 어머님들은 참 바빴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시작한 구슬치기는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서로 한개 더 따먹겠다고 끝이 날 줄 몰랐습니다.
목청 좋은 어머님의 부름에도 허사였고,
헐레벌떡 눈흘기며 달려온 새침떼기 두 살 위인 작은 언니의 욕설이 섞인 호된 꾸지람이 있어야 아쉬운 막을 내렸죠!
내일 만나 다시 겨루자는 약속을 받아 내고 작은 언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아쉽던지.....하지만 아쉬움도 잠깐!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짤랑짤랑 소리나던 구슬 소리.그 소리에 배고픔도 까맣게 잊을 수 있었습니다.
불룩하게 튀어 나온 양쪽 주머니의 구슬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은 마냥 신이 났습니다.
아홉살 아이의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집에 와서 세어보고 또 세어봐도....질리지가 않았던 숫자세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꼴밤 세레를 맞으며 언니들에게 배웠던 더하기 빼기...
그 어렵기만 했던 산수공부는 어디가고,두 주머니 가득 담겨진 구슬세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으니...그것 뿐이랴~상대에게 꾸어준 것까지 일일이 기억을 하는 그 기억력이야말로 가히 천재?!를 능가하고도 남았으리~
"이그~그 머리로 공부를 해라!"하는 언니 오빠의 꾸지람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장록 밑에까지 굴러 들어간 구슬들을 일일히 찾아 내어 나만의 비밀 창고에 고히 모셔 둡니다.
내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처럼 구슬을 따야 집에 돌아와야만 할 것 같은 마음...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아홉살 아이의 마음은 비장하기 까지 합니다!
한폭의 그림이 연상되지 않으시나요?시골에 사셨던 분들은 많이 공감하셨으리라 생각되네요...^*^...1980년대 전후 딱히 놀잇감이 없었던 그 때의 시골 아이들...
지금은 다들 마흔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되었으니......가슴 한켠에 어릴 적 추억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훈훈한 인생의 겨울을 보내지 않을까요?
그 긴~ 겨울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같이 놀았던 코흘리개 친구들을 생각하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련한 추억에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다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 가는지......
신청곡은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즐도 모르고..."로 시작되는 "연"신청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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