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예쁜 동생을 다시 볼수만 있다면
주미향
2006.03.23
조회 29
내가 어릴적 살던 곳은 서울서 조금 떨어진, 산과 논이 빼곡한 소도시였습니다. 학교다녀오면 책가방을 내던지고 메뚜기 잡으랴, 수수털이하랴, 자그마한 주전자를 들고 옹달샘물 떠오랴 하루가 아주 바빴답니다. 내가 8살, 바로 아래 남동생이 6살, 그리고 막내인 여동생이 5살이었는데, 나와 남동생은 막동이를 떼어놓고 다니려고 요리조리 애를 썼습니다. 조그마한게 따라붙으면 다니기도 불편하고, 칭얼대면 귀찮고 했으니까요. 몰래 몰래 집을 나서다 "언니야, 오빠야 어디가, 같이 가아~" 하는 소리에 냅다 뛰어 달아나며 깔깔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막동이가 머리가 아프다며 시름시름 앓아 누어버렸습니다. 의사인 아빠가 이약 저약을 써도 소용이 없자 주변의 어른들은 다시금 수군대셨습니다. 새집을 짓고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서라 이사 동티가 났다며 무당을 불러 굿을 하라 하였습니다. 동생은 안방 아랫목에 힘없이 누워있는데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무당은 쾅~쾅~ 징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춤을 추어 댔지만 동생의 머리아픈 병은 차도가 없더군요. 약뿐 아니라 좋다는 것을 이것 저것 먹여도 차도가 없자 다시 막내를 들쳐업고 찾은 서울의 대학병원에서의 결과는 뇌종양이었습니다. 의사인 아빠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셨다 하더군요. 수술을 해서 식물인간으로 일생을 살아가게 할 것인지, 어린 생명줄을 놓을 것인지를 말입니다. 이러는 동안 동생은 아픔없는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가장 좋아하던 빨간 원피스와 모자를 넣은 아주 자그마한 관을 들어 안방 모서리마다 돌아가며 쿵쿵 치더니 어른들은 침울하게 집을 나스셨습니다. 나는 어린것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마루 끝에 선채 가늘게 떨며 손만 빨고 있었습니다. 앨범속의 동생이 너무나도 동그란 눈을 뜨고 예쁘게 웃고 있는데, 40 여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잘해주지 못한 이 언니는 지금까지 가슴이 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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