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하니까 도시락이 떠올라 이렇게 올려봅니다.
전 자라면서 금방지은 뜨거운 밥을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침은 엊저녁 먹다남은 찬밥.
점심도 그날 아침에 남은 찬밥.
저녁은 또 점심때의 찬밥!
위의 두오빠는 남자라서, 막둥이는 막내라서,
학교를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도시락을 쌀때도 두오빠와 동생은 김이랑 계란말이반찬에
따뜻한 흰쌀밥이었고 전 눌은 밥이나 보리가 젤 많이섞인,
반찬도 역시 김치, 그것도 머리나 꼬리부분의 것들이었습니다.
제짝은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덕분에 외동딸이라는
귀염을 받으며 항상 소시지에 어묵에 계란프라이에
밥또한 그때 당시 아주 귀했던 보온밥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었죠.
그애옆에서 반찬뚜껑열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엔가 아침에 도시락 네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순간적으로 전 오빠 도시락을
가방에 쑤셔넣고 얼른 도망치듯 학교로 향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될때까지 창밖운동장을 수십번도 더 쳐다보며
'엄마가 날 잡으러 오지 않을까?
오빠가 점심때 도시락 뺏으러오진 않을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수업을 제대로 받을수가 없었죠.
그리고 막상 점심시간이 됐을때 전 가방에서 그 도시락을
도저히 꺼낼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절 도끼눈으로 째려보시며
"이 가시나가, 니도시락인지 오빤껀지 구분도 못하나?"
독수리 병아리채듯 제가방을 뺏어 오빠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어보시더니
"뚱쳐갔으면 다 처묵고 오지 와 그냥 갔고왔노.
퍼뜩 무라, 아나 어서!"
노려보는 엄마앞에서 전 오빠의 도시락엔 계란프라이가
두장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맨밑바닥에 한장, 흰쌀밥위에 또 한장.
억지로 아귀아귀 밥을 퍼넣고 있는데 그렁그렁 맺힌 눈물사이로
분홍빛으로 보이던, 그렇게 먹고 싶었던 소시지는
결국 하나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린시절 엄마의 도시락 차별은 서럽게 제가슴을 할퀴고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내나이 마흔이 넘고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그시절 엄마의 힘겨움을 조금은 알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엄마도 흰쌀밥을 먹고 싶었는데 자식들을 위해
참고 계셨다는걸 말이죠.
이젠 엄마도 나도 흰쌀밥을 얼마든지 먹을수 있는데,
쌀밥이 너무 흔해 하루에 열그릇이라도 먹을수가 있는데
당뇨합병증으로 엄만 늘 잡곡밥만 드셔야 합니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앞도 잘 보이시지 않는 눈으로
오늘도 엄마는 하얀 쌀밥을 가득 지으십니다.
그리곤 만나는 사람마다 "밥 묵었나?" 물으시죠.
엄마는 가끔씩 내게 이러세요.
"니 어릴때 내가 맘아프게해서 벌받는기라"
그런말을 들을때 제마음이 더욱 아파지네요.
'엄마 그런말마시고 앞으론 건강하셔야해요.
사랑해 엄마'
(영재님 넘 슬픈사연인가요^^*
지나고나니 슬픈기억도 힘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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