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우리 엄마의 등을 밀어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엄마는 눈물샘이 막혀서 자꾸 눈꼽이 끼고 눈물이 밖으로 흘러내려 다른 사람에게 보기 싫다고 하면서 자식들의 성화에 못이겨 안산에 와서 눈물샘 뚫는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 것도 대수술이여서 전신마취를 하였답니다. 처음 받아보는 수술이라 엄마는 많이 긴장하셨어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병실로 돌아오시는데 4시간이상이 걸리더군요.
일흔이 훌쩍 넘긴 엄마는 많이 고통스러워하시면서 "괜히 하셨다"하시더라구요.
여하튼 엄마는 치료때문에 서울에 오랬동안 머무르셨죠. 군포 둘째 오빠네 집에서 , 서울에 있는 셋째 오빠네 집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 집에서 머무르다 내려가셨죠.
사실 우리 형제는 8남매 5녀 3남입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죠.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부족해서인지 둘째 언니는 미국에서 산답니다. 참고로 저는 일곱번째 딸입니다.
엄마가 저희집에 계시는 동안 저는 맛있는 것 많이 해드리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엄마에게 오빠네 집보다는 딸네집이 편하니 내가 때밀어드릴테니까 목욕하고 가시라고 하셨죠.
사실 아빠가 10년전에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사셨기때문에 등에 때미는 것도 여의치가 않으셨을 거예요.
욕실에 뜨듯한 물을 받아놓고 엄마가 몸을 좀 담근 다음에 제가 들어가서 등을 밀어드렸는데 엄마 등이 왜이리 좁아보이던지
제 몸보다 더 많이 야위셨더라구요. 마음이 울컥하더라구요.
시골중에서 깡시골에서 8남매를 다 대학에 보내시느라 하루에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은 저녁식사와 잠잘때 뿐이었죠.
엄마는 집안일을 할 사이가 어디있나요. 논이며 밭이면 다니시느라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갖지는 못하셨어요. 발에는 굳은 살이 박힌지 오래고 손은 거북이 손이 된지도 오래셨어요.
요즈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우리 엄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요.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효도한번 제대로 못해서 자꾸 올라와서 같이 살자고 해도 선산이 있고 논밭이 있고 동네 사람들이 다 좋아서 굳이 오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언젠가 늦지 않은 시기에 엄마에게 효도할 시간이 오겠죠?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들으면 왠지 엄마 생각이 든답니다. 우리 엄마 내년에도 건강하고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립니다.
유영재씨도 내년에는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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