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 퇴근하면서 어머니의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부모님은 가슴속에 영생하는 존재인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아버지는 역사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다 항일 반일운동을 했으니까요?
내어머님은 일찍돌아가셨습니다만 아버지말씀에 순종하는 전형적인한국의 여인상이었습니다
지금 다커서 50고개를 넘어서 이제는 황혼을 준비해야하는 나이가 되다보니 지나온 세월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전후세대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 파괴되어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어린 자식들이 굶어죽을까봐 어머니는 수건을 푹뒤집어쓰고( 전쟁에서 팔다리등을 다쳐서 요양하는 정양원이라는 곳이 내가 살고 있던 무허가집 옆에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린 인절미 몇조각을 얻어오셔서 그것이라도 녹여서 자식들입에 넣어주고싶으셔서 들고오시는것을
바가지채로 집어던지시면서 내자식들에게 얻어먹이지않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어제일 처럼 뇌리를 스칩니다
일주일을 물만 먹고 굶어죽게 생겨서 나는 너무어려서( 7살)내위에 언니를(12살) 남의집에 식모살이를 보내자고 어머니가 하도 조르니까 옆집에서 딱하여 데리러 왔는데 우리 아버지 말씀하시길 "누구는 자식을 낳아서 종을 부리고 나는 자식을 낳아서 종으로 보내느니 같이 굶어서 죽겠다"하면서 안보내셨습니다
그 언니가 사법고시에 붙고나서 "식모가 될뻔했던 사람이 판사가 되었습니다"라고 어느책엔가 기고를 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나다
너무 배도 고팠고 너무도 추운시절을 지나왔기에내 자식들은 앞으로의 시간은 춥지않고 배도 부르게 살기를 희망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었을 것으로 이제 내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가 되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없는 동갑내기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반대를 하시다가 나중에는 포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궁색하기 그지없는 신혼집에 오셔서 다른 자식들에게 받은 구두티켓과 용돈을 슬그머니 밀어놓으시고 가셨던 그 마음을 제가 알기에 문득 문득 아버지가 몹시도 보고 싶습니다만
이제는 제 기억속에서만 뵐 수 있는 분이랍니다
우리 6남매 아버지의 꼿꼿한 기질을 이어받아서 사회요소요소에서 자신의 역활에 충실하면서 바르게 살고 있습니다
내가 우리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굶으면서 과연 딸자식을 고시공부도 시키고 야간대학도 보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역시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아서 아들 딸 구별하지않고 사회의 필요한 한 인간으로 키우려고 노력하였고 다행히 생각이 바른 아이들로 자라준 것에 감사하면서
힘들어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이정표같은 노래가 있으면 틀어주세요
늘 음악 감사히 잘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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