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에 다녀온 고향..
정미란
2005.12.05
조회 29
"꼭 좀 내려왔으면 좋겄는디..."

평소와는 다르게 꼭 한 번 다녀가라는 시어머님 말씀이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주말 대설주의보 예보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퇴근하자 마자 온 가족이 집을 나섰습니다.

추석 때 뵙고 처음이니 두 달이 조금 지났는데 어르신들께서는
부쩍 얼굴이 상하셨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여쭈었지요.

"글쎄... 집에 도둑이 들었다..."

두 분 모두 일흔이 훨씬 넘으셔서 더 이상 농사는 짓지 못하시는데 부여가 밤이 많이 나는 고장이라 가을에 밤을 수확하여 돈을 조금 모으셨던가 봅니다. 예전에 통장에 남아있던 돈과 합쳐서
800만원이 모였답니다.

조금만 더 모아서 천 만원이 되면 애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눠주자고 어머님께선 이웃마을 비닐 하우스에 일 다니시고, 추운 겨울인데도 보일러에 기름도 안 넣으시고, 아버님께선 이발도 안 하셨답니다.

그런데...
도둑이 들어와서 아버님의 통장과 도장만 쏙 꺼내간 것이었어요.
훔쳐 간 당일, 부여와 논산, 유성의 은행창구에서 각기 다른 사람이 전액을 인출해 버렸구요....

너무나 놀랍고 상심이 되신 두 분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젊으셨을 적엔 7남매들 키우고 가르치느라 늘 힘들게 사시고, 자식들 출가시킬 때도 변변히 해 준게 없다고 언제나 마음아파 하시더니...

자식들 누구 하나 그 돈을 받을 사람이 없건만, 흡사 잘리워진 나무 둥지라도 자식에게 내어주고픈 시부모님의 자식 사랑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아버님의 상심하신 얼굴과 눈물젖은 어머님 얼굴 뒤로 굵은 눈발이 날리고....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내다 보니, 어머님께서는 저희 차에 가득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계셨습니다.

궂은 날씨에 힘들게 내려오라 하신게 마음에 걸리신 당신께서
들고계신 그 빗자루 만큼 앙상하신 손으로 어렵게 어렵게
눈을 치우시는 모습을 보며, 또 다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지만
늘 부모님보다 자식이 먼저였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자식에게는 무한히 쏟아부으면서도 부모님께 드릴 것은
늘 가계부를 떠올렸음을 반성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뒤늦게 철든 며느리도 용서하시구요....

신청곡 : 김광석 - 어느 노부부의 ...
아, 또 노래 제목이 생각 안 납니다.
그래도 좋으신 우리 제작진 님들께서 꼭 들려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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