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곡식 창고 옆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읍니다.
그는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지도 않았읍니다.
그런데도 매일 저물 무렵에 나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면 반드시 쌀 닷 되를 가지고 왔읍니다.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물어도
아무에게도 대답해 주지 않았읍니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을 지냈으나
음식은 늘 부족함이 없었고 옷차림은 늘 말끔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집을 살펴보면
늘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없었읍니다.
어느 날 그가 병을 앓아 죽게 되었읍니다.
죽음을 앞두고 은밀히 아들을 불렀읍니다.
"창고의 몇 번째 기둥을 살펴보면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하나 있단다.
그 안에 쌀이 가득 쌓여 있는데
평소에는 막혀 있었서 나오지 않을게야.
네가 손가락만 한 나무를 가져다
그 안에 집어넣고 살살 후비면 쌀이 흘러나올 것이다.
하루에 닷 되씩만 꺼내 오고
절대로 그 이상을 가져오면 안된다."
그가 죽자 아들은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했읍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이
옷과 음식을 부족하지 않게 마련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흐르자
아들은 쌀을 조금 얻어야 하고
많이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 영 성에 차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구멍을 더 크게 뚫어
하루에 서너 말씩 가져왔읍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것도 마땅치 않았읍니다.
또다시 구멍을 더 크게 뚫었읍니다.
그렇게 되자 쌀이 금새 없어지는 것을 이상히 여긴 창고지기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읍니다.
결국 아들은 붙잡혀 벌을 받아 죽고 말았읍니다.
- 권필의 '석주집'중에서 -
①현이와 덕이 - 순진한 아이
②큰 별 - 바닷가에서
③현경과 영애 - 참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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