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들이어서 행복합니다.
작은옷 보따리 하나들고 아버지의 뒤를따라 대문으로
들어서던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보통 키에 하나로 곱게 땋아 묶은 긴머리와 고운 얼굴을 한
어머니는 미소로 우리 3남매에게 인사를 건네셨고
이어 아버지로부터 짧은 소개를 받았었지요.
"너희 새엄마시다, 어서 인사들 하거라"
아버지의 말씀은 일곱살 어린 저에겐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고 태풍이 세상을 뒤흔들어놓듯 그땐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날 아버지대신 입학식에 참석해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던 어머니가 제어머니가 아니었으면
하고 참 못되게도 무시해 버렸었지요.
소풍과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바쁜 농사일 다 미루고
도시락 준비해서 따라오는 어머니가 싫어서 숨어버리거나
아프다는 거짓말로 학교에 가지 않은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닌 저를 혼내기는커녕 아무런 말씀없이
뒤돌아 눈물을 훔치셨지요.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고기국은 명절에나 먹을수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어머니는 저희 3남매의 생일이면
소고기를 가득 넣은 미역국을 끓여주셨습니다.
결혼후 다른 도시에서 떨어져 살때도 어머닌 제 생일날아침
밥때를 맞추어 퀵서비스로 미역국을 보내주셨지요.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2년가까이 병원생활을 하실때
저희들은 고작 한달에 몇번 병문가는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닌 불편한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을 주무시며
24시간 간호를 하셨지요.
아버지에 관한 모든짐을 어머니께만 떠맡긴것 같아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버지는
무심한 세상을 등지고 마셨지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이젠 가슴에 묻을법도한데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30년넘게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느티나무의 역할을
해주셨는데 이 무뚝뚝한 아들은 오늘까지도 따뜻한 표정한번
부드러운 말한마디를 건네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배아파 낳은 제자식한테도 어머니만큼 사랑과 정성을
다히지는 못했을겁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라는 이말을 대신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론 다정다감한 아들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오래도록 우리들곁에 계셔주세요.
그동안 하지못한 효도 다하면서 이제는 저희가
정성껏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영재님 봄날은 간다 (백설희님 목소리로) 들려주세요.
어머님은 혼자서 즐겨부르시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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