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주말
김자영
2005.10.05
조회 39
샬롬 영재님!
몇일 전 참 씁쓸한 기분을 갖게 된 주말이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아이를 데리러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평소 같아서는 밖에서 차를 대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을 텐데.
그날따라 아이가 뭘 하나 보고 싶은 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슬그머니 열람실까지 올라가려는 찰나에
제 고등학교 대 담임 선생님께서 계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 분은 제가 학창시절 때에 가장 좋아했던 분이지요.
물론 지금도 존경하는 분이시고요.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도 늘 찾아뵙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평생 제 인생의 고문이 되어달라고 졸랐었지요.
지금도 그 맘은 변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서 제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선생님을 찾아 뵐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제가 스스로 저를 창피하다고나 할까.
“뭐하니?”
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요.
나는 ‘이게’ 하고 싶어 늘 상담하고
선생님께서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셨는데,
지금 난 아무 것도 못 하고 그냥 현실에 주저앉고 말았으니
선생님께서 이 것을 아시면 얼마나 허무할까.
얼마나 실망할까.
이런 생각에 미루고 미룬다는 게 졸업한 지 벌써
15년 정도 됐네요.
그런데 전 지금도 그런 미련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나 봐요.
선생님께서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휴대폰 폴더를 열고 통화하는 척, 아무도 못 본 척,
그 분을 피해버렸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뵙고 싶었던 분인데.
아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선생님께서도 절 보신 것 같은데
제가 모른 척 한 것을 눈치 챈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했고요.

선생님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습니다.
저는 그 반 반장이었고요.
그러니 매일 얼굴 보고, 이런 저런 얘기도 많이 나눴었죠.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저를 학생으로만 대해 주신 게 아니라
늘 저를 한 인격체로 대해 주셨어요.
그건 저만이 아니라 우리 반 모두에게 그러셨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주저 안하고 선생님을 찾고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우스운 저의 고민들도 진지하게 들어 주셨는데.
입시전쟁에 시달릴 때
너무 답답한 맘에
“선생님, 오늘은 버스 타고 종점까지 달리고 싶어요.”
라고 말씀 드렸는데, 모든 선생님들이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에도
우리 담임선생님께서는 “기다려.”라고 말씀하시고
좋은 얘기 몇 마디 해 주시고는 주말에 저랑 몇몇 친구들을 데리고
함께 버스 종점까지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러셨죠.
“하늘 봐! 금방 비올 것처럼 많이 흐리네.
크게 비 오고 나면 다시 햇볕이 날거야.”
그 때, 그 말씀이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불안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그 분의 가르침 밑에서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어요.
특별히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꿈은 참 많았지요.
그런데 지금 제 모습은.
주부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막상 내보이려고 하니까
제가 부족해서 이 일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속상하네요. 제가 너무 작아 보이네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못난 생각에 맘이 편치 않네요.
정말 씩씩한 저였는데.
영재님!
지금 제 옆에서 자고 있는 이 남자는 이런 제 맘을 알까요.
이 남자까지 제 수고를, 제 가치를 몰라준다면
제 인생이 정말 헛되게 느껴질 것 같네요.
변명은 그만 할랍니다.
다음에 선생님 뵈면 그냥 인사드릴래요.

신청곡 : 이안/물고기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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