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평생 그리움이 많은 분이시다.
일제 강점기에 평안도에서 1남 2녀중의 장녀로 태어나셨지만
열살때 아버지를 여의셨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노래도 달래야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노래는
고생을 많이 하셔서일까 어머니는 즐거운 노래보다 슬픈 노래를 더 좋아하셨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유복자인 남동생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 외할머니는 자식들을 혹독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도
하얀 이불 호청이 깨끗이 안빨렸다며
다시 우물가로 집어던지셨다는 외할머니
유난히도 깔끔하신 외할머니
아흔이 넘으신 지금도 언제나 단정함을 잃지 않으신다.
혹독함
그래도 그것이 자식사랑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다고 한다.
보따리 장사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반듯하게 키우신 외할머니
그래서 그런지
외삼촌은 결혼해서 여지껏 외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 없는 집의 장녀
유난히 고생도 많으셨던 어머니
집안의 입하나 줄이겠다고
일찍 결혼했지만
아버지의 병과 군입대로 또한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하신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내 어머니의 이름이자 애창곡이자 3남매 자식들 모두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하며 부르는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저릿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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