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어떤 노래를 부르셨던가?
육남매 어린것들의 배고픈 등살에 당신의 입술에 노래의 리듬이 머물 수는 있었겠는가?
왠수 같은 가난에 큰아들 둘째아들 공부도 못시키고 객지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의 한 맺힌 가슴에 어떤 노래가 머물 수 있었겠는가?
젊은날 어머니는 행상을 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철 따라 생선이나 과일을 떼어다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 다니시며 돈이 없으면 쌀, 김치 또는 짠지무 같은 것이라도 바꾸어 그 찬거리를 다음날 새벽 기차로 실어 남대문 장사꾼들에게 넘기는 그런 행상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욕심껏 바꾸신 짠지무를 머리에 이시면 쌀 한가마니 무게는 족히 되는 무게에 목이 쪼그라드는 고통에도 한번 내리면 다른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다시 머리에 일 수 없기에 행인 없는 늦은 저녁 시골길을 저녁 밥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 생각에 종종걸음으로 돌아 오시던 어머니의 그 내려 앉는 머리의 무게감에 무슨 흥으로 노래를 흥얼거리실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아둥바둥 허덕여도 때꺼리 걱정을 하던 당시 어머니께 노래에 정 들일 수 없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당시 철도국(지금의 한국철도공사)공작창에 어렵사리 임시직공 으로 일자리를 얻으셨던 아버지께서 그 곳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의 꼬임(?)에 월급타면 주기로 하곤 야외전축을 덜컥 들고 들어 오신겁니다.
아버지야 당신 좋은 맛에 가져 와 틀어 놓은 전축에서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에 밤거리~~~"
간들어진 목소리의 여류가수의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고, 무거운 머릿짐에 꼬부라지는 고개를 곧추세우며 종종걸음으로 돌아 오신 어머니에겐 그 노랫소리가 곱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한마디 찟는 소리 못하셨던 천상 옛날분이셨기에 그 복창을 속으로 삮혀야 했을겁니다.
그런데 한번! 딱 한번! 어머니의 노래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날 장사나가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50환만 달라고 조르던 막내 아들에게 동전 하나 쥐어 주지 못하고 나가셨던 날.
뿌리쳐진 손끝에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을 잡고 울다가 한참만에 어머니 가셨을 법한 길을 쫒아 갔습니다.
한없이 걷다가 어머니를 찾지도 못하고 돌아오던 길
어둑어둑 땅거미는 내리고 배도 고프고 더군다나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는 상여가 나갈 때 사자밥을 놓아 두는 그래서 귀신이 나온다는 "만재고개"!
날은 어두워 오고 혼자서는 도저히 넘을 용기가 나질 않고 그래서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려나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무서움과 서러움에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만 무서워 울음소리는 목구멍 저 속에서만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앉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길 모퉁이를 돌아 오시던 어머니!
컴컴해졌지만, 거리가 멀어 얼굴을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저는 단박에 어머니임을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봄으로 더욱 서럽던 나의 눈물......
그날도 어머니는 머릿짐을 이시고 막내아들의 손만을 꼭 쥐고는 귀신 나온다던 달 밝던 만재고개를 넘으시며
나지막히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 노래는 이듬해 국민학교를 들어가 배우게 되었고
언제나 어머니를 기억하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셨음에도 변변히 여유롭게 사는 자식들 없는 탓에 아직도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재봉틀로 부업을 하시며 당신 가용 돈을 벌어 쓰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 옛날 50환짜리 동전 하나 막내 아들 손에 쥐어 주지 못하고 장삿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에게는 그 노래가 얼마나 배고픈 노랬었을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아 하늘이 아릿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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