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학이 어멈봐라 어쩜 저리도 노랠 잘하노"
내도 이 목청만 좋으면 한 없이 부르겠건만....
"니 아버지가 그저 내 노래 부르면 복나 간다고하두 잔소리를 했싸서
지금내가 노래한 소절 못뽑는 것 아이가?"
스무살 꽃 다운 나이에 김가네로 시집온 울 엄마는 자신의 감춰진 끼를 발휘하지 못함이 늘 아버지 때문이라 하셨습니다.시집와 닷해 지난 스무다섯살부터 댕기기 시작한 교회에서 어머니는 찬송가를 익혔고 동네 어른들의 잔치 자리에 "영자 어멈 그 자태가 고운 그 모냥으로 한곡조 뽑지 그래?"하면
어머니는 어쩔줄 모른채 낯이 붉어지고 사람들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채 어느새 집 마루에 턱 걸터앉아 허공을 바라보곤 하셨습니다
그 뒤로 학봉골에선 어머니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한분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가끔 <속회예배> 라는 모임을 갖을 때
"내주를 가까이..."중얼거리듯 하시던 어머니의 찬송가를 빼고는.....
그러던 어느 여름날,아버지가 지방으로 4박5일의 출장을 떠나신 그날은 장댓비가 흙을 일구듯 시원스레 앞마당을 두들겼고,밀가루에 부침반죽을 하시며 부엌에서흘러나온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울밑에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빗소리와 섞여 어머니가 처음 흐느끼시듯 부르던 노래는 마치 숱한 시집살이 몸고생과 맘고생을 한꺼번에 토하듯 뱉어내신 노래였습니다.
여름이 막바지로 기울고 장맛비도 남북을 오르내리며 무더위가 한 낮을 열선 처럼 달구던 어느날 어머니는 그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내도 나이먹고 이제 시댁의 수줍음도 사그라드는데,노래 한자락을 해야하지 않겠냐,영학엄니 한테 내 조금씩 배운 노래지.니 아버지도 이젠 나일 들었는지 내가 가끔 한소절씩 부뚜막을 닦아내며 이 노랠 들으면 어휴 내이 멍그니까 그 수줍음도 사라지나보레 ..그러시더구나"
세월 앞에 누구나 절로 맘이 약해지는 거지...
부뚜막만 부여 잡고 닦고 쓸고 인생이 노래자락과 같아
때론 구슬프게 때론 신명나게 장단을 맞추는거지
봉숭아를 보면 왜 그리 슬퍼보이는지 화려한것일수록 화려한 색일수록 자세히 들여보면 슬픔이 짙게 묻어나 있어..
울밑에선 봉숭아야......
어머니의 노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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