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곤 살아온 저는,나이들어간다는것,세월을먹는다는 것
함께 주름을 만들어 가는것의 깊은이해를 하게되었습니다.
셋째임에도
위로 그 누구도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아 제일 심성 착하고 부드러운 제 남편이 시어머니를 10년째 모시고 살아온 것입니다.어머니는 여름과 가을 혹은 가끔 겨울에 한달씩의 여행을 찾아떠나셨습니다.이른바 "자식새끼 찾아나서기"
참 아이러니하죠.자식들이 부모를 공양하고 자식들이 부모에 지성을 바쳐야 되는 우리세대의 세태와 달리 시어머니가 오히려 자식을 찾아 나서는 불편한 여행길이라니..
시어머니는 그렇게 한달씩 첫째,둘째,자식을 찾아 설사, 시누이가 실은 내색을 하더라도 자기새끼에 대한 소유권을 놓치 않으셨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려는 듯 꼬박 한달을 채우곤 돌아오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찾아 나서기 뒤의 여행끝에는 앓이가 있었습니다.
아마,자식을 찾아나선 슬픈 여행길에서 받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병으로 나타 나는가 봅니다.
대부분 형제들의 의리가 돈 앞에서 깨지듯,시어머니 소유의 재산 분할을 앞두고 첫째 둘째거꾸로의 시어머니 찾아나서는 그 치열한 현실?도 체험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올해 5월 아침을 자시고 늘 그러듯 경로당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울리는 긴박한 전화!!
경로당을 나오시다 쓰러지셨는데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 계신다는 전화였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이 노인들의 생명은 하루앞을 볼수 없다더니..
시어머니는 그렇게 가볍게 쓰러지셨을 뿐인데 입원하루가 지나 의식을 잃고 언어장애가오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시 어머니는 입원한지 이틀뒤에 쓸쓸히 가셨습니다.
자식을 찾아 나선 뒤 끙끙 앓던 뒤 혼자 울렁이시던 노래도 한소절 남기시지 못하고...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가-고
이미자 선생의 <흑산도 아가씨>였습니다
경기도 용인 시립묘지에 묻인 시어머니
49제 때 제가 나즉이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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