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노래-초우
박민희
2005.06.23
조회 52
어머니의 노래

대전에 사시는 내 어머니는 딸 넷을 키우느라 한시도 맘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셋째인 저는 유달리 중3때부터 어머니 속을 부단히 썩였습니다.
선생님이 되라며 교육대 사범대를 권하던 어머니의 뜻과 달리, 저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고집을 부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는 사흘정도 집과 연락도 없이 친구네 집으로 가출을 해 집안이 발칵뒤집혔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강력 설득 결국 중3 겨울방학때부터 입시 미술학원에 등록시켜주었습니다.

바로 윗 언니가 무용을 한지라 어머니는 뒷돈 대기도 힘들었지만 예술의 길이 하는 것 보다 하고 나서도 얼마나 힘겨운지 고된 작업인줄 알고계셔서 다시는 그런일을 셋째 딸에게 시키고 싶지 않으셨던거죠

고등학교 입학하자 어머니는 아예 이모가 계신 서울로 나를 전학시키고는 본격적으로 H대 주변에 학원을 등록 시켜놓고는 본격적으로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나흘은 서울에 계시고 주말을 이용해 잠시 대전에 가셔서 아버지와 남은 식구들 뒷바라지를 하시고는 부리나케 서울로 올라오시는 고행을 3년내내 하셨습니다.

대전 집은 그야말로 딸인 저의 그림공부에 희생양이 된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원이 끝나는 밤 10-11시 되면 어머니는 학원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시며 가끔 지루한 듯 노래를 나즈막히 부르셨습니다
<패티김의 노래 초우> 였습니다
어느날은 제가 온지도 모르고 학원앞 커다란 느티나무 의자에 앉아서는 초우를 부르고 또 부르곤 하셨습니다.
아마도 셋째날을 키우시는 자신의 힘겨움과 고된마음을 노래로 드러내곤 하셨던가 봅니다.
때로 개인 레슨을 할땐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패물도 모두 팔으셔서 딸의 뒷바라지를 하셨던 어머니!!
작년 칠순을 맞으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지난 시절의 그 고마움이 생각나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물론 대학에 입학했고 몇곳 학원에서 미술강의를 하고 있지만 당시 선생님이되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따랐다면 하는 아쉬움을 어머니 얼굴을 볼때마다 하곤 합니다
오늘처럼 유난히 더운날 하루종일 집에 계시다 유일하게 딸을 데리러 나오는 저녁이 숨통이 트인다시던 어머니에게 초우를 다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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