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에 의례적인 낯빛으로 훑어보다가 덧 글을 달 수 있는 기쁨을 우연히 발견, 역시 우연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마 제어되어보지 못했더라면 그만한 사소한 기쁨이 크게 다가오지 못했겠지요. 그런데도 그 후부터 벌써 오랫동안 연체된 카드 값 부채감에 시달리듯 기쁨을 연장시키는 바쁜 일상에 혀를 내두릅니다.
게시판을 훑다, 닮은꼴들의 형상들을 그려보며, 몹시도 계절을 기다리는 중년 아줌마를 돌아보게 됩니다.
변죽 끓듯 기다리기도 했던 변화를 맞이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어서 여름이 왔으면, 그 지긋지긋한 장마 비와 무더위의 기승들로 하여금 고온다습의 불쾌지수를 높이더라도, 아직은 미운 정(?)의 그 여름을 반갑게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호언장담도 만용에 보태봅니다.
우리 때?(80대 학번)의 어린 시절은 백사장의 추억보다 동네 어귀의 개울가, 혹은 장거리의 반나절을 소요하며 관악산 계곡의 형편이어도 좋을, 혹은 여름밤의 더위를 핑계로 다닥다닥 붙은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다, 상기되는 얼굴로 맞이할 연령 배들의 이성에게 새침했던 더위의 핑계들은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
동네 어른들 평상위의 막걸리와 수박파티에 밀린 내 언니, 오빠들은 아무 곳이나 흔했던 벽돌[당시는 벽돌과는 판이한 부럭크라고 일본식 발음으로 불렀던 것 같음:a (piece of) brick]들을 뜸하게 간격을 두어 엉덩이 붙이고 한두 명의 기타리스트들의 반주에 달을 쳐다보며 소리죽여 합창했던 그 여름,
100일 째다, CC다, 언약식이다. 하는 요즘 아이들은 그런 새침한 순수시대를 촌스러운 내숭으로 보려나? 이성이란 자체만으로 얼굴 붉히며 부러 외로 꼰 부끄러움의 시선들을 마주하지 못했던 늦장 사춘기 시절의 오빠와 언니들을 보며 '나도 안다'는 식의 호기심과 흥분들.
혹여 동네 어른들이 지나치면 오빠, 언니의 무릎에 황망히 앉혀져 방어 제 역할이었어도 좋았는데…
그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또 얼마나, 어서 자라 그들만큼의 키와 비례해 성숙하고 싶었었는지, 무거워진 눈꺼풀도 무시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언니 무릎에 기대어 '여름, 을 비롯한 대학가요와 트윈 폴리오 지금은 올드가 된 팝송들을 주워들으며 여름밤들을 보냈던 것이 엊그제만 같은데… 그 계절이 다시 왔으면 싶은데….
엉터리 발음들로 흥얼거렸어도 멋으로 어우러졌던 때의 팝송들은 원어의 뜻을 알게 된 지금보다 뜻도 모를 무국적 언어로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던 그 감칠맛이 더 좋았는데, 추억의 소묘들로만 남겨지는지….
그런 추억을 거슬러 언니, 오빠의 세대가 된 우리는 줄어든 포크 송과 달리 발라드와 슬로우록, 또는 하드록, 레게, 뉴에이지, 퓨전 등을 섭렵하게 되고, 일렉트릭기타 시초시대의 밥딜런, 야드버즈, 레인보우, 롤링스톤, 블랙사바스, 레드제플린,비틀즈 등의 반향들의 흠모들은 퀸과 KISS, 데이빗보위, 프린스, 레이프가렛으로 바뀌고,
애릭크랩튼, 스모키, 산타나 빌리조이, 비치보이스, 이글스, 브라덜스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등의 여운까지 사이키델릭으로 에시드록으로 브리티시락으로, 크로스오버 까지, 탈탈탈! 바꿈..
그래도 다행한 것은 아직까지 노래방에서 찾는 우리의 18번은 왁스와 변진섭과 이승철, 전인권, 윤도현밴드, 안치환, 최성수, 양수경 등의 시류를 멋지게 부르기를 소망하며 재즈의 멋스러움에 흑인들의 한국적 한의 아우라에 클레식의 장엄함에 난해했던 우리,
어느덧, 그 언니 오빠와 70~80세대(학번),와 30~40세대(나이)로 불리어지는, 젊음은 누락되고 중년의 앉은뱅이가 되진 않았나.....
그래선지 현대와 거슬러 그 시절의 포크가 가미된 <유가속>은 DJ유님의 개성의 역량과 감칠맛의 공감들에 맞장구치고 추억하자며 작정하고 덤벼든 딱히 우리와 ‘결속’같은 공감세대의 끈끈한 것들의 이유를 만들어 정붙이고 살아가는 낙으로 위안삼으며,엄살처럼 그때~ 그시절~ 추억들을 되새기는
그 여름밤들이 그립습니다. 선풍기도 아닌 부채 살에 더위를 맡기고 요즘처럼 아파트 고층의 맞바람에 필요 없는 에어컨소음까지 갖추어야 부끄럽지 않은 물질만능시대의 시달림에 행여나 타인의 시선에 오를까 언감생심 매너와 교양을 따지며 조신하게 지내야 하는 우리는 노래방에서는 가수 같은 쇼맨십은 인정해주고 동네어귀의 있을 수 없는 푼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때의 우리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어린 줄만 알았던 초등생 동생들이 어느 날엔 발음도 그럴듯하게 우리처럼 우리의 읍조렸던 노래들 'To day'와 'Anny Song'등 을 멋지게 부르며 교복의 후진성을 사복의 신선한 충격까지 그 여름의 문턱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신동같은 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신곡과 클래식보다 더 먼 세계의 랩을 읊어대며, 바지를 끌며 거리를 청소하고, 귀고리와 코고리, 피어싱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세대차조차 부끄러워야 하고, 다국화에 편승하고 박식한 음악지식을 갖춘 동생들에게 떠밀려지는 낡은 세대가 되는가 싶어 심보 사나운 나이만 탓하기도…
그래서 입니다. 그래서 그 징그러워도 좋을 그 계절들을 그리워만 합니다.
어서 오너라! 여름아~ 그래도 너만큼 확실한 그늘을 표현하는 녹음은 없더구나. 그 푸르름에 기대어 푸념 같은 추억이라도 더위를 식혀줄 시간 속에 보내고 싶구나!
*결론은 《여름》같은 추억의 생생한 라이브를 듣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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