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노래
정지혜
2005.04.28
조회 53
한나절 밭일을 거두고 낮부터 쏟아 지는 장맛비로 어머니는 밭 언덕 구릉에 앉아
비를 긋고 계셨습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도랑은 둑을 넘길 기세로 거세게 물발을 세웠고 어머니의 눈발에도 핏기가 서려 날이 서 있었습니다.
이미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 키신 어머니는
'당신도 참 무심하시구려,,어찌 하라구,이 내 몸 이 신세로 나두고 먼저 가신다요"

푸념 섞인 말투로 말끝을 흐리시고 하염없이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 하는 여름 비에 맥 없이 기가 죽으셨습니다. 토목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주로 관급공사 일을 맡으셨는데 당시 관급공사 라는 것이 늘 빚을 내 먼저 공사비와 임금을 충당하고 한달 후 결재 받는 일이라 월말이면 늘 돈에 쪼들리셨습니다.
외갓댁 집 담보는 물론이고 웬만한 친 인척의 돈을 죄다끌어 써도 우리 집은 늘 빚에 허덕였고 말일이면 밀린 임금 삯 받으려는 발길로 집안은 늘 고성과 싸움과 멱살로 얼룩졌습니다.
사장이 돈떼 먹고 임금 체불한다느니...관공서에 뇌물쓰다 보니 우리 몫이 부실하다느니,,
사장 지 잘먹고 외지에 집 땅도 많이 사두었다느니.....일꾼들의 헛소문과 험담..........

결국 아버지는 사업을 부도내고 몸저 눕더니 자그마한 집한채를 남기시고 77년 그 해 여름 비가 무심히도 쏟아지던날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머니에게 듬뿍 남긴 빚은 고스란히 어머니, 자식의 어깨와 마음을 짓눌렀고 결국 지금의 어머니 집마저 날아가 버린 후 어머니는 악착같이 그 집을 되찾으려 갖은 모욕과 험담을 들어가며 궂은 일 마다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처럼 반드시 유산으로 남겨준 집을 찾는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지상과제 처럼 여겨 졌고 오빠와 나는 일지 감치 외할머니 댁에 맡겨 졌고 가끔 찾아오신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부둥 켜 안고 내내 삭힌 눈물을 쏟아내셨습니다. 오빠와 나는 학교에서 조차 빚쟁이 자식들이란 별명으로 불렸고 선생님 마저 우리를 외면 하신채 늘 따돌림의 나날 들 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린 10년 세월 어머니는 지금의 집을 찾았고 밭 몇마지를 가꾸고 계십니다
우리는 10년 후 어머니 곁으로 품으로 돌아왔고 돌아오기 1년전 외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70을 넘기 신채 그동안 막혔던 자신의 인생의 회한을 풀어내고 계십니다
차도균 노래 철없는 아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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