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애창곡- 이연실 희망가-
고희정
2005.04.21
조회 50
속이 들여다 보이는 비닐가방에
알록달록 샴푸병,린스병,샤워타월 ,이태리타올..
등등을 담아들고 목욕탕에 갑니다.
이제 거동이 많이 불편한 엄마를 모시고요
겨드랑이에 팔을 끼고 부축을 하니
"아가, 엄마 놓고 가자.엄마 혼자 걷는 것이 더 편타.."
하시며 기어이 팔을 물리치시네요.
마흔이 훨씬 넘은 막내 딸의 팔에 의지해도 되련만
저 꼿꼿한 자존심을 어찌해야 할는지..
혹.길에서 허리가 'ㄱ'자로 구부러진 할머니를 뵌 적이
있으시지요? 저의 엄마가 그러하십니다.
집에서 왔다갔다 하실 땐 허리를 접으신 채로
아니면 엉덩이를 끌고 다니시지만.
길에 나서면 그 허리를 펴고 서십니다
다리를 짚고 허리를 드는 그 모습은
가히 인간 승리라고 해야 합니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으시는 엄마를 모시고
거의 일년여 만에 몹쓸 딸년이라고 스스로를 태질하면서
목욕탕에 갑니다.
이래서 딸년은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다고 하나 봅니다.
아니.딸도 딸 나름 이겠지요..
엄마와 보조를 마추느라 느릿 느릿 걸으면서
어릴 적 세숫대야에 비누.. 수건 그외 빨래감을 담아들고
내 손을 잡고 목욕탕에 데려 가시던 그 때의 엄마를 생각해 봅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목욕탕엔 물 보다 사람이 많았던
그 시절 말입니다.
목욕탕안의 물이 뜨거워 엄살이라도 부릴라 치면 덜 뜨거운 물을
먼저 끼얹어준 다음 품에 포옥 싸안고 물로 들어가셨지요.
아아... 그 느낌이라니.. 엄마의 가슴은 포근하고 몽실몽실 했었지요
엄마의 뱃 속에 든 태아가 느끼는 안온감이 그럴까요?
이제 뿌리까지 드러난 노송 같은 엄마의 몸을 가만히 만져 봅니다
훔치는 눈물에 치마자락 마를 날 없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뼈 까지 휘게 만들었는지 옹이 처럼 튀어나온 굽은 등허리
밀면 미는대로 주름지는 살갗,펴지지 않는 무릎.
일곱남매의 든든한 집이었던 뱃 속도 내려 앉고
수시로 손을 넣어 더듬던 몽실한 젖 가슴도
이젠 터만 남아있습니다.
조물 조물 버무려 내면 감칠 맛 나던 음식을 만들고
아픈 배를 만져 풀어주던 그 손 마저 곱아버린 것이
가슴이 저며지듯 아픕니다.
삼년전,차례로 큰 언니와 작은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더욱 작아진 엄마의 몸 속엔 폭발할 것 같은 슬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가.. 이리 돌아앉아라.."
엄마께 등을 맡기고 돌아앉습니다.
여윈 손목을 세워 등을 밀지만 간지럽게만 느껴집니다.
알몸인 딸의 등을 이리 저리 만지면서 엄마는 고운시절의
당신을 생각할까요?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것 처럼 엄마의 하얀 퍼머머리를
잘 빗어서 귓 뒤로 넘겨드립니다.
"아, 우리 엄마 진짜 이쁘다아~!"
볼에 홍조 오른 엄마는 정말 예쁘게 웃고 계십니다.
"엄마, 자주 올게요. 같이 목욕하게요."
"괜찮다 . 아가. 한사코 오지마라. 엄마 혼자서도 잘허니께."
라고 하시며 무겁디 무거운 허리를 세우십니다.
혹, 길을 지나시다가 허리가 몹시 굽은 할머니를 뵈면
제 어머니 인듯 살펴드려 주세요.
엄마께서 유일하게 흥얼거리시던 노래 하나 있습니다
~이 풍진 세월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를 부르시면서 세상의 길흉화복을 쓸어담으셨을
엄마의 가슴이 절절하게 다가 옵니다.
노랫가락에 섞여 나온 한숨 소리를
이제야 알 듯 합니다..
엄마의 애창곡 희망가...
그것은 아직도 나에게 주는 엄마의 샘물이기도 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