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란이 있은 1950년 함경남도 서쪽 끝 장진군에 머물고 있던 할머니는 어머니와 외삼촌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셨습니다.
그때 어머니 나이 열 세 살 .남으로 남으로 사람에 섞여
전란의 포염에 휩싸인채 허기와 졸음과 견디기 힘든 공포를 안고 한올 한올 뜸을 뜨듯 한발한발 남으로 남으로 정처없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합니다.
한국·중국·러시아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두만강 푸른물에… 그리운 내님이여~
어머니의 노래가 되어 버린 눈물젖은 두만강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민족의 한과 할아버지를 잃은 멍울진 가슴으로 할머니의 시린 가슴의 노래의 대를 이어 어머니의 노래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구에 간신히 몸을 푸신 피난 가족 일행의 삶은 산다는 것 이라기 보다 끊지 못한 붙어 있는 생명의 연장을 위한 고달픈 고행 이었습니다 피난길에 지친 할머니는 피난 오신지 3년만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와 외삼촌은 그야말로 고아가 되어버린 신세로 세상에 널부러진 몸으로 버텨내는 일치고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다 치고, 헤어져서 소식을 알 수 없는 등 전쟁이 끝난 후 상처는 보듬을 여유는 생각조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눈물젖은 두만강
식민지 시대 생계를 위해 북간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건너야 했던 두만강
어쩌면 어머니는 전란후 자신의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르며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애끓는 생의 하소연을 하고 계셨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젖은 두만강의 어머니는 지금도 봄꽃이 허울허울 피면 노래가 되어 다시제 곁에 오롯이 서 계십니다
김정구 선생의 눈물젖은 두만강
어머니의 노래로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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