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애창곡【물레방아 도는 내력】
한성호
2005.04.14
조회 48
아버지는 노래를 구성지게 잘도 하십니다.
내가 중학교 때.
우리 사랑방은 말그대로 동네 사랑방이어서 저녁을 먹으면 마실을 가는 것이 무슨 행사처럼 모여 듭니다.
시골 촌동네라 농사철에 쓸 새끼를 꼬는 사람들이 많아서 짚을 잘 추려서 일감을 갖고 오기 일쑤입니다.
손놀림이 빠른 사람은 자기 몫을 하고 남의 것도 거들어 주면서, 그런 일을 할 때는 의례 아버지의 구성진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죽장에 삿갓쓰고. . .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 . .
가련다 떠나련다. . .
레퍼토리가 시체말로 청순 가련형이지만 그 때 사람들은 그런 곡조를 좋아하고 그것이 당시에 유행가이기도 했읍니다.
아버지는 옛날 소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시대 썸방이라나 하는 기계를 제작하는 기술자였는데, 언제나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을 하면 저녁 늦게 해가 기울 때 도시락통을 덜렁거리면서 온다고 합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도 노래 소리를 듣고는 사랑채에 있던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 . .
'에미야! 에비 오나보다.' 고 하셧답니다.
지금은 국도변으로 소사역 조금 못가서 일흥사라는 공장이 있었는데 전쟁말기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데리고 갈려고 해서 아버지도 선발이 되셨지만 할머니가 극구 반대를 해서 가지 못했다고~~~~~~
약주를 드시면 자랑스럽게 그 얘길 하십니다.
한번은 여름 한철~~~~
소사 (지금 부천시 )에서 약주를 드시고 통금이 가까와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시험장에서 내리셔서 집으로 오는데,우마차가 다니는 큰 길 두번째로 가야 우리 집으로 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밤인데다 약주를 드셔서 몽롱한 터라,구분을 못하고 첫번째 길로 들어서서 기분좋게 노래를 부르시며 ~~~~~
취기와 더위로 웃도리를 벗어서 손가락에 걸어 어깨에 걸치고 휘적휘적 걸어 가셨읍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도 집이 안 나타나다 어렴풋이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약간은 낯선 곳이었읍니다.
더워서 땀은 나고,몸은 자꾸 흔들리고, 눈은 자꾸만 감기는데 집은 당최 찾을 수 없고. . .
이집을 가서 기웃거려도 우리 집이 아니고, 저집을 가서 기웃거려도 우리 집이 아니고. . .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꾀꼬리 . . . .
그렇게 서너 시간을 헤메니까 어둠의 신은 찾는 성의가 갸륵한지. . .
어둠이 서서히 드러나고, 술은 깨셔서 정신이 조금씩 들더랍니다.
그리고 지금껒 옆동네를 헤메고 다니신 걸 알았읍니다.
시간은 새벽 5시. . .
그 때 집을 찾아 오셨읍니다.
밤새 속만 타는 어머니는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바가지는 켜녕, 아버지를 보자 우선은 반갑기만 하더랍니다.
'여보 손은 왜 그래요.'
그 말에 생각해 보니 웃도리는 간 곳이 없고, 그 때까지 손가락을 꼬부린 체 손을어깨에 걸친 모습이 무슨 로뎅의 걸작품인양 굳어 있고. . .
아버지는 창피하다면서 '얘들 한테는 절대로 말하지마라.'고 못을 박았읍니다.
그말씀까지 하시며 어머니는 '술만 들어 가면. .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십니다.
생각하면 사람이 사는 것이 한낱 희극이 될 수도 있고, 가슴저미는 후회가 될 수도 있읍니다.
내겐 어떤 모습으로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 삶을 기억하게 한 아버지 앞에서 지금의 삶을 되새김질 하는 버릇없고 천진스런 생활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은 아주오랜전에~~
아버지 즐겨부르던 구성진 노래
벼술도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정든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을 알아 보련다
사람 좋아하시고,술좋아하시고,노래잘하시던 아버지
더욱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옛날 아버지가 구성지게
부르시던 아버지 애창곡
【물레방아 도는내력】을 듣고싶어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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