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어느동네에 신동이 났다하여 온동네가 떠들석하고
우리집안의 자랑거리였다 한다.
그 신동이 이유도 까닭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나이 겨우 8살에 그만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한다.
아버지 바로위로 형님 되시는분이었다.
그런이유로 할아버지는 세상사 모든뜻을 잃어버리고
금강산에 들어가 버리셨고
할아버지 대신으로 집안 생계꾸려야했을
큰아버지는 이미 득도의길을 찾아 출가하신지 여러해.
어쩌는수 없이 어린 삼촌고모들의 배를 주리지 않기위해
열살된 우리아버지 울산 화장사,절집에 살림살러 가셨는데...
오늘에는 장의사가 있어 장례식을 일체 맡기지만
그 옛적엔 절에서 그런 일도 했던 모양.
손재주 좋고 눈썰미 있는 아버지는 절집에 몇해계시는 동안
꽃상여 만드는걸 전부 배워 오신거였다.
아버진 한전에 오래 근무하셨는데
꽃상여 만드는 수입은 아버지의 한달 월급 만이나 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그일을 맡으시곤 했다.
사람이 나 언제 죽는다 미리 예고 하는법 없으니
아버지의 상여만들기도 언제나 하루 아니면 이틀의 여유밖에
주어지지 않아 우리는 온가족이 밤을 지새워 상여를 만들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마당에다 제재소에서 사오신 각목들을
하나하나 대패질하고 매끈하게 다듬고 계시다.
지금에사 생각이지만
그 나무들이야 흰색 천으로으로 사방이 다 가려지고
상여꾼들의 손닿는 곳이나 대패질 하면 되련만
아버지는 우직하리만치 전부 대패질로 다듬으신다.
나무로 상여의 틀이 만들어지면
언제나 용을 제일 먼저 그리셨다
상여의 한가운데 길이데로 놓일 용인데
숨도 안쉬고 단번에 그리시는것 같았다.
그다음엔 네 귀퉁이에 자리할 봉황을 그리셨는데
봉황은 나무틀이 있어서 탁본을 일차하고 그위에 덧씌워 그리시곤
용과 봉황의 채색은 절집에 쓰는 단청분으로 하신것 같다.
그러는 사이 우리식구 모두 어린나까지 꽃접기에 여념이 없다.
꽃분홍,진노랑,흰색...
습자지 얇은 색지를 여러번 접어 가운데 철사로 묶고 양끝을
모양내어 꽃잎으로 한장한장 펼쳐내어 반구형의 꽃을 만드는일이다
꽃분홍 이파리 한닢식 펼치면 손끝이 분홍색으로 물들곤 했다.
지푸라기로 커닳게 만든 꽃방망이에 꽃아두었다가
아버지는 지금의 운구차 처럼 상여의 모든면에
색색의 꽃들이 꼿히고.
영여라고 하는 작은 가마만한 상여 하나를 더 만들면
아버지의 꽃상여는 완성되어 이튿날 상여군들이
가지고 오기까지 마당한켠에 서 있었는데
달빛교교한 밤이나 되면 언니들과 나는 우리가 만든 상여인데도 마치
그안에 귀신이라도 나오는양 무서워 하며 변소에도 못가곤 했다. (퍼온글)
사람이 살면서 오래살고 여부는 우리가 주관할 일이아니지만
이 세상살아가면서 웃으며 베풀며 너그러이 살고싶네요
주변에 아는사람이 병으로 쓰러져가는걸 보면서 하루를 살더라도 정말 복스럽게 복을지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