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선생의 차이(두발통 숙제)
비둘기
2003.09.26
조회 85
선생님


어릴적 고향이 충청남도 였다.
아산군에 있는 배방국만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는데
그때 그선생님을 그려보기로 한다.
함자는 황 인자 석자(황인석)이시다.

3학년 봄소풍을 현충사로 갔었다.
갈때는 개울물이 얕아서 징검다리를 건너서 손에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고기를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갈까나...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맑고 깨끗한 노래가 좋으시다며
자꾸만 노래를 부르라고 칭찬도 해주시고 가르쳐 주시기도 하면서 목적지에 닿았고, 점심을 먹고 보물찾기를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소나기가 줄기차게
쏟아졌다.나무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정도 비가 멈추는것
같기에 하산하기로 하고 뒤돌아오는데.
아뿔싸!! 아까건너던 개울물이 어느새 허리이상만큼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한참을 생각하신 선생님 물속으로 들어가시더니
한사람씩 업어서 건너주셨다.
이놈은 왜이리 무겁누 조금씩 먹어라 .
에고 이놈은 왜이리 가벼워 살좀쪄야겠어.
내차례가 왔다. 선생님등에 업히는 순간 손에들고있던
보자기에 싼 도시락이 선생님의 볼을 내리쳤던 것이다.
아이고 아파라. 이녀석이 선생님 볼따귀를 치네.
더럭 무서웠다 혹시 선생님께 혼날까봐.
선생님 하시는말씀 모르고 그랬지? 넌 너무 가벼웠어
밥많이 먹고 살좀쪄라 하시면서 웃우셨다
6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하나씩 때로는 둘씩 업고서 안고서
시간반이 넘도록 개울물을 건너주시던 그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청명한 가을 날이다
지금은 칠순은 되셨을 황인석 선생님이 몹시 그리워 진다.



선생

4학년이되자 우리집은 안양으로 이사를 왔고 군포 국민학교로
전학을 왔지요.그때는 군포 의왕 안양으로 분리되있지 않았고
그냥 안양시 군포면 이렇게 주소가 되어 있을때지요 아마도..

전학오던 첫날
맹아무게 선생님이 저와함께 교실로 들어섰지요.
전학온 친구가 있단다. 얘는 저기 시골에서 전학왔는데
충청도어디라더라..사이좋게놀아라.
인사하고 들어가! 사이좋게 놀아유.내 인사말이였지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데요 선생님도 웃우셨지요.
이튿날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길래.
저의대답은 "야" 선생님은 저를 한참 째리더니 나오라하데요
너 누구보고 야라고 했어?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시골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 온거냐.
저요. 왜 혼나야하고 애꿎은 부모님과 시골 선생님이
책망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그때는 몰랐지요.
여기는 대답할때 "네"아니면"예"로 하는데 우리고향 충청도는
야"라고 대답하지요.그때 맹아무개 선생님은 제가 충청도에서 전학온것을 아셨음에도 저를 얼마나 많이 때리시는지..
친구들에게도 부끄럽고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적은 없을껄요.졸업을 해서도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그선생님이
용서가 안되어서 늘 가슴에 묻고 살았지요.
내아이가 전학을 다닐땐 혹시나 해서 선생님을 살피게 되더라고요.세월이 흘러 국민학교 동창회가 있다길래 갔더니
아이들은 모두다 학부모가 되 있고 맹아무게 선생님의 근황을 물으니 48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네요.그렇게 아이들에게
말씀도 함부로 하고 성질도 잘내고 툭하면 잘때리시더니
젊은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니 씁쓸하네요.
그선생님으로 인하여 어두웠던 국민하교 시절 이였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에서 선생님하시는 분들께 올리고 싶은 한마디
교사는 아이들의 교훈입니다.그 얼굴을보고 그행동을 보고
그 말씨를보고 아이들은 꿈을꾸고 이상을 높히고 미래를 설계함을 잊지마시고 직업이기전에 산 교육이며 聖스러움 입니다.


선생님은 먼훗날 아름답게 기억되어지지만.
선생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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