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혼자만 알고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보석상자속 고이고이 간직해온 추억의
사랑이야기를 한편 공개합니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하면서 어두컴컴한
다방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다방문이
열릴때마다 고개를 돌려보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않고 어느새 약속시간 보다 한시간이라는
시간이 기다림속에 지나가고 말았다.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라서 못 알아본건 아니겠지,
혹시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난건 아닐까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더 이상 기다릴수
없어서 다방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버스 터미널로
발길을 돌리는데 저 멀리서 하얀 덧니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며 아는체 하는 현숙이와 주먹을 치켜세우며
"너 죽었어"하며 반가워하는 지영이가 보였다.
약속 장소가 어긋나서 서로 원망하며 딴곳에서
한시간씩 기다리다나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
현숙이는 멀리 문경에서 애청자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예쁘고 귀여운 동생이었고 지영이와는
어쩌다 한번씩 만나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몇 안되는
음악 친구중에 한사람이였다.
이틀후면 안동을 떠나 김천으로 가야했기에 그냥
보내기엔 섭섭하다며 지영이네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것해 송별회를 해주겠다는 편지를 받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백년다방으로 갔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백조다방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바보처럼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으니 두 아가씨들이 얼마나
미워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지영이네 집을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솔솔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길가에 곱게 된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을볕에
빨갛게 익어가는 탐스런 사과가 주렁 주렁 메달린
과수원길을 따라 흙먼지 나는 시골길을 한참이나
걸어서야 도착한 지영이네 집앞.
작은 동네에서 살다가 큰동네 온것만해도 기분이
좋은데 여자친구한테 초대받고 좋아하는 친구집에
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도 달아오고 예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궁금했던 숙녀의 방을 구경해보니 이것저것
예쁘게 꾸며놓은 모든것이 낯설기만 했다.
화장품 냄새와 벽에 걸린 자수가 코와 눈을 유혹했다.
그날 저녁늦게 저녁을 맛있게 먹다가 작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맨날 머슴아들만 있는 집에서 밥을 먹다가 지영이와
현숙이 그리고 지영이 여동생까지 있어서 밥먹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점심도 굶었으니 밥을 먹다가
그만 돌을 씹어버렸다.
태연한척 했는데 돌씹는 소리를 모두 들었는지
나만쳐다보고있으니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지영이 어머니는 지영이보고 손님 맞이하느라
돌까지 섞어서 밥을 했느냐며 핀잔을 주시고
지영이는 얼굴이 붉어진채 당황해하며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집에 오니 좋아서 덜렁대느라 쌀을
대충씼었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식사 시간이
끝나고 셋이서 이웃집에 놀러가서 밤늦게까지
지영이 친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라디오에서 자주 듣던 이름이어서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면서 친근감있게 대해주는 친구들이
아주 고마웠다.
믿음직하게 생겼다는 지영이 어머니 말씀을
들으니 좀 쑥스럽기도 하고... 이튿날 오후
아쉬운 발길을 돌려 현숙이와 함께 지영이네
집을 떠나왔다.
그 후에도 가끔씩 만날때마다 현숙이는 지영이
보고 약을 올리곤 했다.
"언니! 일부러 돌을 넣은건 아니냐"고 물었고
그럴때마다 지영이와 나는 웃으며
지난날을 회상하곤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특별한 추억거리가 있으니
더욱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씩 그 친구들 모습이 그리워진다.
이젠 밥할때 돌을 섞어서 하진 않겠지.
주부 경력 벌써 십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까...
희망곡 : 양희은 하얀목련
주소: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35-5 제일정육점
사랑 그 기쁨과 눈물.
남왕진
200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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