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4일은 아버지의 70회 생신이십니다.
남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럴때마다 제 속마음은 - 싫어요......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세요! 하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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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구부정한 허리로 그 큰 사과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따셨을 빨갛게 잘익은 사과를 저는 아침 저녁으로 베란다를 들낙거리며 무심히 베어 먹습니다.
사과는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이 햇빛을 충분히 받아서 예쁘고 맛이 제일 좋습니다. 매년 제일 먼저 따는 사과를 보내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저는 그동안 무심히 먹기만 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저는 취직과 동시에 기차를 따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의 시골은 전화도 집집마다 없고 마을 이장님댁에만 행정관청에서 필요에 의해 설치해준 수동식 전화가 있었습니다. 한손으로 전화통을 잡고 다른 손으로 경운기 시동 걸듯이 마구 돌리면 교환이 나오는 전화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불편한 통신 덕분에 일생일대에 꼭 한 번, 6형제중에 어느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아버지의 필체를 또렷이 기억 합니다. 제이름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김 명 히 ......(편지를 전해주는 동료의 미소가 야릇하긴 했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무거운 나뭇짐 위에 하얀 산목련을 한다발 꺽어 얹으시고는 힘차게 마당으로 들어서시던 젊은날의 아버지....
평소엔 무뚝뚝하고 어렵기만 한 아버지셨는데 어쩌다 약주라고 한잔 하시고 밤늦게 들어 오시는 날이면 자는 저희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어머니와 평소엔 어림도 없던 자식 자랑을 오래도록 하셨습니다. 그땐 물론 아버지의 평소와는 다른 행동들이 어색하기만 했고 또 자는척하느라 코통스럽기만 했었지요.
그 옛날, 어머니는 딸의 생일날 기차를 타고 찿아 오셨습니다.
머리위엔 참기름을 듬뿍 바른 절편을 무겁게 이시고, 왼손엔 식혜 두병(1.8리터짜리 소주병)이 들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던 그 봄날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역 광장 시계탑 아래 앉아 계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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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쯤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할까 이리 저리 궁리만 하는 속 좁은 제 자신이 밉기만 합니다.
저를 좀 꾸짖어 주세요.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신청곡 : 양희은 - 부모
한계령
늙은군인의 노래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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