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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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8/26(수) [행간] '유감'의 정치학
2015.08.26
조회 579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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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김성완 (시사평론가)

◇ 박재홍> 김성완의 행간,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 나와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성완>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오늘 주제 들어보죠.

◆ 김성완> 어제 남북이 합의한 공동보도문의 문구해석을 둘러싸고 지금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북측이 지뢰도발에 유감을 표시한 걸 사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겁니다. '유감'의 정치학, 그 행간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 박재홍> 영어로 표현하면 'Regret'이죠?

◆ 김성완> 네, 맞습니다.

◇ 박재홍> 'Regret'. 유감이냐 사과냐, 지금 찬반논란이 팽팽하잖아요.

◆ 김성완> 합의문에 사과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남북 공동보도문 2항을 보면 북측의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도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유감이라는 표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건데요. 이게 만약 사과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아쉬움을 갖는 분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협상에 참여했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 표현이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요. 하지만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이게 무슨 사과냐, 이런 문제제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국민주연구원은 공동보도문 어디에도 사과는 없다, 아전인수격으로 사과를 해석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공동보도문을 파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도 네티즌들이 찬반으로 갈려서 공박을 주고 받고 있는 상황이고요.

◇ 박재홍> 그러니까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라는 그런 주장이고. 사과다, 이렇게 말하는 측은 내용상으로 봤을 때, 맥락상으로 사과로 봐야 한다 이런 주장이죠.

◆ 김성완> 사과나 마찬가지라는 표현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있는 거죠.

◇ 박재홍> 그러면 무슨 근거로 사과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건가요?

◆ 김성완>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요. 사과의 주체가 명시되어 있고 과거 전례에 비춰볼 때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이런 겁니다. 첫째, 사과의 주체가 명시되어 있다, 이거는 합의문 2항을 보면 '북측은'이라고 하는 세 글자가 분명히 들어있다는 겁니다. 정부가 협상할 때 이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요. 왜냐하면 합의문에 그냥 '남북한 당국은' 이렇게 하거나 아니면 주어를 빼고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이렇게 표현이 시작될 수도 있었는데 굳이 '북측은'이라는 것에 집착을 했거든요.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일본 아베 총리가 8월 14일 담화를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사죄, 반성, 책임.. 여러 가지 우리가 볼 때는 사과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단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가 볼 때는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그게 이유가 뭐냐하면 가장 큰 부분이 주어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네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자기라고 하는 표현이 들어있지 않은 거예요. 이게 무슨 사과냐, 이런 지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 '북측은'이라고 하는 주어가 들어간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을 의식한 조치 아니냐 이런 겁니다.

◇ 박재홍> 일단 주어가 있다는 점이 첫번째 근거고. 두번째 이유는요?

◆ 김성완> 두번째는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표현하는 주장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북이 도발을 하거나 문제를 발생시킨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연평도 포격사건처럼 유감표명조차 받지 못한 일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나마 사과를 받아낸 게 4번이 있었습니다.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9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2002년 2차연평해전, 이건데요. 청와대 무장공비침투사건 때 당시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직접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말한 것 외에는 모두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역시 모두 주어가 없었고요. 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측은' 이라고 하는 주어가 있었으니까 과거 사과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사과다, 그러니까 사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정부의 주장입니다.

◇ 박재홍> 무엇보다 핵심이 주어가 있다라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할지라도 유감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 이 문제가 여전히 남을 것 같아요.

◆ 김성완> 맞습니다. 정치인들이 유감이라는 표현을 자꾸 사과 대신해서 사용을 해서 '유감'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 박재홍> 방송내용이 문제가 되어서 유감이라고 제작진이 말하면 청취자들은 그게 사과냐, 이렇게 표현하시거든요. 그게 무슨 사과냐.

◆ 김성완> 왜냐하면 유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있는 느낌.' 이러니까 이건 사과가 아닌 거 아니냐 이런 반론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요. 그런데 외교화법을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물론 남북관계를 외교적 관계로 볼 수 있느냐,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상대이기도 하니까 외교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하면요. 사과라는 표현을 영문으로 표현하면 'Regret'과 'apologize'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다 사과로 얘기를 해요. 그런데 'Regret'이라고 하는 표현은 유감이라고 보통 번역을 하고요. 'Apologize'라고 하는 것은 사과라고 번역을 하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2명의 여중생이 치어서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 부시 대통령이 어떤 표현을 사용했냐하면 ‘깊은 애도와 유감의 뜻을 전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도 'Apologize'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Regret'이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했거든요. 2001년 클린턴 대통령이 노근리 사건 조사 결과를 공동발표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때 깊은 유감이라고 하는 게 'Deep regret'이라고 하는 표현을 쓴 거였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사과를 분명히 받아내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국제 외교관계라고 하는 외교화법에서는 'Regret'이라고 하는 유감의 표명을 사과의 의미로 전달한다는 겁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이번에 북한이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우리가 사과의 의미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2012년에 있었던 건데. 우리 축구대표팀 선수가 독도 세리머니를 했잖아요. 그때 축구협회가 일본 축구협회쪽에 'Regret'이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해서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거든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거 사과한 거다,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이게 사과할 일이냐, 이렇게 해서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외교화법이라고 하는 건 한마디로 사과를 하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는 거다, 그런 측면으로 생각해보면 북한이 지금 사과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도 일측면 좀 이해가 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진정한 사과의 의미는 사과를 했을 때 그 표현이 어땠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과 이후에 어떤 행동을 보여주느냐, 여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앞으로의 책임있는 조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이냐, 그게 핵심일 것 같아요. 김성완 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성완>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