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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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윤호진 (뮤지컬 '명성황후' 감독)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를 맞이해서 처음 막을 올렸던 뮤지컬 ‘명성황후’, 1995년 처음 시작돼서 지금까지 무려 20년간 이어져왔습니다. 국내 최초 1000회 공연 돌파, 관객수 160만 명 돌파. 1회 공연 의상 수 600벌. 최장 출연 배우 19년. 그간의 기록들만 짚어봐도 참 엄청난 숫자들이죠. 뮤지컬 ‘명성황후’의 20주기, 더욱 뜻 깊은 것은 올해가 광복 7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굳건히 뮤지컬 ‘명성황후’를 이끌어온 윤호진 감독을 만나보겠습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 윤호진>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축하드리겠습니다. 뮤지컬 초연 후 20년이 흘렀어요. 오늘까지 막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 뭐였나요?
◆ 윤호진> 그동안에 꾸준하게 사랑해 주셨던 관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오늘날까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박재홍> 또 모든 공을 관객들에게 돌리시네요. (웃음) 처음 연출 시작하셨을 때만 해도 머리카락이 까맸었는데 지금은 하얗게 새셨다면서요?
◆ 윤호진> (웃음) 네. 20년 세월 동안 변했습니다.
◇ 박재홍> 지금까지 ‘명성황후’와 같이 한 세월 생각하실 때 기분이 어떠세요?
◆ 윤호진> 제 머리는 하얘졌지만 작품은 20년 동안 더 젊어진 것 같아서, 그런 데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 박재홍> 처음에 명성황후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세계에 내놓을 우리의 뮤지컬을 만든다’ 이런 꿈도 꾸셨다고 하셨습니다마는.
◆ 윤호진> 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의 소재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명성황후가 시해 100주기가 되는 5년 정도 전부터 제가 준비를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민비라고 저는 나쁜 역사관만 있어가지고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런데 새로운 논문들이 나오면서부터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의 얘기라면 충분히 세계 어디다 내놔도 공감을 할 수 있겠다, 조그마한 나라가 열강들 틈 속에서 어떻게든지 살아남아보려고 몸부림쳤던 격동의 시기를 잘 보여준다면 세계인들한테도 감동을 줄 수 있겠다고 해서 주제를 선택을 했습니다.
◇ 박재홍> 그러셨군요. 무엇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창작작품으로 만들어내셨기 때문에 굉장히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오히려 작품은 젊어졌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점이 가장 많이 바뀌었나요?
◆ 윤호진> 줄거리, 어떤 구조랄지 이런 것들을 대폭 손질해서 더 젊어졌다 하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 박재홍> 20년 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면 똑같은 거, 그래도 하나도 안 바뀐 건 없나요?
◆ 윤호진> 조명을 받아서 그렇지 밝은 데서 보면 누더기 같은 옷들이 있는데요. (웃음)
◇ 박재홍> (웃음) 새로 장만하시죠, 감독님.
◆ 윤호진> 아직까지 쓸 수 있는 건 쓰고. 하여튼 의상은 한 10년 이상 쓴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황후 무엇보다 음악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작곡가 김희갑 씨가 참여를 해서 쓰는데. 곡 쓰는 데만 준비 기간이 4년 걸렸다면서요?
◆ 윤호진> 김희갑 선생님이 참 많은 곡들을 불평도 안 하시고, 여러 가지를 요구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다 이겨내 가시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셨죠.
◇ 박재홍> 김희갑 씨는 ‘사랑의 미로’라든지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같은 대중가요에 친숙한 분인데. 뮤지컬 음악을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 윤호진> 처음이죠. 이게 처음이죠.
◇ 박재홍> 그런데 어떻게 김희갑 씨를 찾아가시게 되셨어요?
◆ 윤호진>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향수’라는 노래를 들었어요, 제가. 어려운 노랫말에 시냇물 흘러가듯이 이런 곡을 붙일 수 있다면 이 서사극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 수 있겠다는, 어떤 생각이 들어서 한 번도 만나보지도 않은 분을 제가 찾아가서 만나 뵀죠.
◇ 박재홍> 그러면 그때 택시를 안 타셨으면 그리고 그 택시 안에서 ‘향수’가 흘러나오지 않았으면 이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이 탄생 안 했겠네요?
◆ 윤호진> 그럼요. 그게 참 운명적인 건데. 어떤 면에서 우리적인 색깔이 드러났다고 봐야죠.
◇ 박재홍> 그렇죠. 그래서 우리의 정서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음악들이 탄생하게 된 거고요.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는 곡은 어떤 곡입니까?
◆ 윤호진> ‘백성이여 일어나라’라는 곡이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죽은 원혼이 나와서 ‘우리가 한번 다시 돌아보자. 우리는 좋은 나라를 만들자’하는 그런 의미의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노래인데. 그 곡을 뉴욕타임즈에선 뭐라고 했냐면 ‘러시아 혁명가, 프랑스 국가와 견줄 만한 곡이다’ 이럴 정도로 아주 극찬을 받은 곡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백성이여 일어나라.’ 명성황후의 대표적인 명곡으로 감독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어요. 뮤지컬 ‘명성황후’ 국내 1000여 회 공연, 그리고 수많은 해외공연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였습니까?
◆ 윤호진> 뉴욕 첫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매회 2, 300명씩 돌아갔어요, 관객들이. 고생을 하고 갔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열렬한 관객들의 환호 때문에 그런 고생들이 멋있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한 나라의 황후가 무참히 암살되는 사례는 좀 드물고요. 그래서 역사적인 사실을 몰랐던 미국인들에게도 충격도 안겼을 것 같은데.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요?
◆ 윤호진> 그때는 항상 열강들이 약소국가들을 식민지화시키려고 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열강들한테는 자기 반성, 조그마한 나라도 저렇게 평화를 추구하고 자기의 문화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생존하려고 하는 그런 엄청난 노력들, 이런 것들이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 것 같아요.
◇ 박재홍> 일본 무대에도 오른 적이 있었습니까?
◆ 윤호진> 구마모토라는 지역이 난민들이 많이 나온 지역입니다. 거기에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난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저희 작품을 영상으로 틀어주면서 주요 장면들을 갖다가 노래로 불렀죠.
◇ 박재홍> 그랬군요. 당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윤호진> 역사를 모르니까 상당히 충격들을 받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들이 벌인 일에 대해서 모르고, 근대사에서 잘 안 가르치니까.
◇ 박재홍> 그랬군요. 언젠가 일본에서 제대로 된 명성황후의 완전한 작품이 또 올려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으시겠네요.
◆ 윤호진> 그럼요. 그래서 NHK에서는 명성황후 특집이 나갔었어요. 그래서 상당히 일본에서 뜨거운 반응이 있었는데. 그런 역사는 서로가 공유하면서 반성할 것은 반성을 하고 서로가 그런 작품을 공유함으로 인해서 더 친해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앞으로 30주년, 40주년도 기념하실 거죠?
◆ 윤호진> 그럼요. 가야죠.
◇ 박재홍> (웃음) 명성황후 언제까지 계속되면 좋으실까요?
◆ 윤호진> 푸치니 오페라처럼 100년 후에도 공연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리고 광복 70주년 행사 총감독을 맡으셨어요.
◆ 윤호진> 네. 전야제서부터 15일 경축식, 15일 저녁에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우리 기쁜 젊은 날’ 해서 많이 와서 보시면 우리의 위대한 여정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희망을 우리가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재홍> 또 광복 70주년 행사, 의미 있는 무대로 꾸미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호진> 네.
◇ 박재홍>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이죠. 윤호진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