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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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한춘자 (故 장광열씨 부인)

-하루 15시간 근무, 한달에 50일 근무한 셈
-쉬고 싶어도 기사가 없어서 쉬지 못해
-그 와중에 근무조건 개선위해 투쟁했다
-38년 일했지만, 장례식장에 사측 방문 없어
지난 6월 9일,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려온 고속버스 기사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습니다. 지병도 없었고 술, 담배도 안 했던 베테랑 버스기사였던 고 장광열 씨 얘기인데요. 고인의 근무일지를 봤더니 30일 동안 무려 50일에 해당하는 시간을 운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달에 50일 근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고인을 떠나보냈던 가족들의 마음 어떨까요. 고 장광열 씨의 아내인 한춘자 씨를 연결하겠습니다. 한춘자 씨 나와계시죠?
◆ 한춘자> 예.
◇ 박재홍> 남편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네요. 지금도 많이 힘드시죠?
◆ 한춘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전날 저녁에 새벽 5시에 깨워달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거든요. 저희는 평소에 휴대폰 알람을 다르게 맞춰놔요. 제 것 맞춰놓고 아기아빠 것 맞춰놓고요. 아기아빠는 일어나도 조금이라도 더 잠을 취하고 싶어서 5분 일찍 알람을 맞춰놨더라고요. 그래서 알람이 울려서 ‘얼른 일어나.’ 했더니 ‘5분만 더 자고.’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일을 나갔는데 그날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 박재홍> 그러니까 새벽에 출근하시기가 너무 힘드시니까 ‘조금만 더 자자’라고 하시면서 너무 힘들 게 일을 하셨던 거네요. 마지막으로 나누신 대화는 뭐였습니까?
◆ 한춘자> 일 잘 갔다 오겠다고. 그 한마디만 하고 갔어요.
◇ 박재홍> 그 새벽에 잘 갔다오겠다라고 남긴 말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지난 5월 근무표를 보니까 보름 동안 하루만 쉬고 나머지 날은 모두 14~15시간씩 근무를 하신 걸로 나타났네요. 평상시에도 피곤하다거나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겠습니다. 어떤가요?
◆ 한춘자> 원래 아기아빠가 그런 말은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자기 일하는 걸 가족한테는 잘 알리고 싶지를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5월에는 그 얘기를 몇 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쉴 때가 됐는데도 왜 안 쉬냐?’고 그랬더니 요새 기사가 달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사가 달리면 달리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자기는 쉬어야 될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네가 직장생활 해보라고 그게 쉽게 마음대로 되냐고. 기사가 없는데 어떻게 쉬냐고’ 그러면서 6월은 쉰다고 그러더라고요.
◇ 박재홍> 그러니까 버스대수도 줄어들고 있는데 그런 걸 커버하려다 보니까 남아 있는 버스기사님들이 더 과로를 하게 된 거네요.
◆ 한춘자> 그렇죠. 그래서 일이 힘드니까 기사님들이 잘 안 와요. 모집을 해도 잘 안 오나 보더라고요. 너무 힘드니까 젊은 사람도 이 일을 할 수도 없죠. 아기아빠는 지금 40년 가까이 이 회사에 몸을 바친 거에요.
◇ 박재홍> 그렇군요.
◆ 한춘자> 38년 가까이 했으니까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최근 5월 근무가 지난 40년 가까이 일했던 순간보다 더 힘드셨던 것 같아요.
◆ 한춘자> 네, 더 힘들게 일했어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왜 안 쉬냐고 했더니 기사가 없어서 그러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고. 그런 말을 몇 번 했어요. 제가 그래서 그게 제일 가슴이 아파요. 강제로 막 쉬게 할 걸...
◇ 박재홍> 억지로라도 쉬게 하실걸.
◆ 한춘자> 그래서 저희가 싸웠어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면서..
◇ 박재홍> 그러니까요. 하루에 14시간 근무를 하면 거의 이틀 치를 근무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근무시간을 계산해 보니까 한 달 동안 거의 50일치를 일하신 셈이었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 한춘자> 이게 사람이 하겠어요? 배운 것도 없다고 몇 년 안 남았으니까 열심히 한다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죠. 이렇게 힘든 일 누가 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 박재홍> 그러면 실제로 이렇게 말씀 들어보니까 굉장히 어려운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고 계신 건데요.
◆ 한춘자> 그래도 아기아빠는 애들한테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해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좋은 데 취직해서 아빠같이 이렇게 힘든 일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일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애들 3명 다 좋은 데 취직을 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한춘자> 어려운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다 반듯하게 장성해서 취직 다 했어요.
◇ 박재홍> 그리고 고 장광열 씨는 열악한 버스기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활동하셨다면서요?
◆ 한춘자> 네.
◇ 박재홍> 그런데 선생님이 속한 전북고속만 유일하게 민주노총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런 회사여서 파업하시면서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한춘자> 많이 겪었죠. 그런데 무리하게 직원들한테 임금 올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버스 일하면서 근무 조건개선 같은 것을 요구한 것이에요. 기사들한테 너무나 가혹하니까 이런 조건들을 들어달라고 농성한 것이지, 막무가내 농성한 것은 아니에요.
◇ 박재홍> 그러니까 임금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었던 것인데요.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으셨던 것 같네요. 남편이 돌아가신 다음에 장례식장에 회사 관계자들도 왔었나요?
◆ 한춘자> 그거 말만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이 과로로 숨진 대구 숙소로 달려갔습니다. 대구에 달려가니까 그 소장하고 그 동료 직원들만 있더라고요. 일처리를 조금 하다가 소장은 들어갔어요. 본사에서 직원 한 명도 투입을 안 시켰습니다. 보내주지를 않았습니다. 저희들이 3일째 되던 날에 회사에서 사람이 안 오니까 민주노총에서 가서 ‘너희들 너무하지 않냐, 사람이 이렇게 고인이 갔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냐’. 항의를 하니까 오후 늦게 회사 직원들 세 분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장이 먼저 와야지 왜 직원이 오냐. 사장 먼저 온 다음에 당신네들 오시오,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가세요. 사장님 먼저 보내세요.’ 그렇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 박재홍> 40년 가까이 근무하신 분한테 회사에서 그렇게 대우를 했군요.
◆ 한춘자> 자기네들 잘못이 없다면 왜 안 왔겠어요. 잘못한 게 있으니까 안 온 거 아니에요? 억울해요, 가슴 아프고.
◇ 박재홍> 여전히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셨어요.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터무니없는 이런 근로조건 문제가 개선이 되어야 할 텐데요.
◆ 한춘자> 그렇죠, 돼야죠.
◇ 박재홍> 지금 회사는 이 상황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상황인가요?
◆ 한춘자> 네. 지금도 말 한마디도 없더라고요.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기사님분들한테요.
◇ 박재홍>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요.
◆ 한춘자> 이해 할 수가 없죠. 이해도 안 되지만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기아빠가 잘못한 것은 38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 박재홍> 고 장광열 씨의 죽음으로 열악한 버스기사들의 근무조건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그런 기회가 꼭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 한춘자> 그랬으면 좋겠어요.
◇ 박재홍> 어머니, 오늘 정말 힘드실 텐데 어려운 가운데 말씀 많이 전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춘자> 감사합니다.
◇ 박재홍>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리다가 숨진 고속버스 기사 고 장광열 씨의 아내 한춘자씨와 말씀 나눠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