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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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4/13(월) 윤무부 아들 "황새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다"
2015.04.13
조회 865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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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윤종민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 연구원)



지난 주말에 봄꽃 구경하러 다녀오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그런데 봄에는 꽃향기뿐만 아니라 새소리도 있습니다. 봄철에 우리나라를 거치는 철새들부터 토종 텃새들도 많죠.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자취를 감춰가는 새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열심히 새들을 보살피면서 복원하는 새 박사 한 분을 만나보죠. 우리나라에서 '새 박사'란 말을 들으면 바로 ‘윤무부’라는 이름이 떠오르는데요. 하지만 오늘 만날 분은 윤무부 박사의 아들입니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부자가 나란히 조류학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화제의 인터뷰, 황새 삼촌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은 차세대 새 박사입니다.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의 윤종민 연구원입니다. 안녕하세요.

◆ 윤종민> 안녕하세요.

◇ 박재홍> 반갑습니다. '부전자전'이란 말을 바로 이럴 때 쓰는 거네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탐조여행을 다녔다' 이런 증언도 있던데요. 사실인가요?

◆ 윤종민> 예.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하시고 나서 사진들을 보면요. 야외에서 새 관찰하고 그러면서 데이트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그러면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휴가일 때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여름이나 겨울에요. 그러면 그때도 무조건 놀러갈 때는 새를 보러 가신 거예요?

◆ 윤종민> 네.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과 여행갈 때 보면 유원지나 이런 곳을 다니잖아요. 그런데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드물고, 깨끗하고, 새들이 많고 이런 곳을 주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오히려 윤 박사님은 아버님한테 '사람이 있는 데 가고 싶다' 이런 말씀을 했겠네요.

◆ 윤종민> 그렇죠. 그 당시에 저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요. 주말에 가족들과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이런 게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 어머님은 불만이 없으셨어요?

◆ 윤종민> 아버지 빼고는 가족 전부가 그런 것들이 큰 불만이었죠.

◇ 박재홍> (웃음) 그러니까 이제 수십 번, 수백 번 이야기를 해도 아버님은 꿋꿋하게 휴가 때도 새를 보러 가셨군요.

◆ 윤종민> 예. (웃음)

◇ 박재홍>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가 새가 좋다고 해도, 아들인 본인이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또 윤종민 연구원님도 아버지의 길을 함께 따라가게 됐습니까?

◆ 윤종민> 저도 고등학교 때 대학 진로나 아니면 대학원에 가서 전공을 선택할 때 크게 걱정 없이 자연스럽게 과거에 보고 배웠던 것들을 생각하면서요. 그냥 이쪽으로 계속 평생 공부하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진로를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새를 향해서 가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된 거네요.

◆ 윤종민> 그렇죠. 그런데 부모님은 진로 결정할 때 ‘그대신 이쪽으로 가면 배고픈 직업이니까 각오하고 가라.’ 이런 반대의 말씀이나 우려를 많이 하셨죠.

◇ 박재홍> 그러면 아버님인 윤무부 박사님이 처음에 반대하신 거네요?

◆ 윤종민> 네. 저희 집에서는 반대를 많이 했었죠. 나중에는 더 이상 말리시지 않으셨고요.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하니까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사제지간이 되셨어요. 부자지간이 사제지간이 되면서 새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신 건데요. 제가 듣기로 대학생 때도 데이트 대신에 아버지와 새만 보러 다녔다, 이런 이야기가 있던데요. 사실입니까? (웃음)

◆ 윤종민> 네. 대학교 때도 보면, 집안에서 사제지간이 되면 상당히 불편한 점도 많은데요. 일단 주말에 친구들하고 놀기로 약속이 돼 있는데 아버지가 어디로 새 보러 가야 한다고 하면 약속을 다 접고 가야 되는 상황이 많이 있었죠.

◇ 박재홍> 부자지간보다 센 게 사제지간이었군요.(웃음)

◆ 윤종민> (웃음) 그렇죠.

◇ 박재홍> 그러면 여자친구와도 트러블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때요?

◆ 윤종민>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런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그런 걸 뚫고 우리 아드님도 새 연구원이 됐습니다. 지금 황새복원센터에 계신다고요?

◆ 윤종민> 네.

◇ 박재홍> 우리나라에 황새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로 줄어든 건가요?

◆ 윤종민> 저희 아버지 세대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에 마지막 황새쌍이 있었다고 보고가 돼 있는데요. 제가 74년생이니까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살던 황새는 보지 못했던 첫 세대고요. 지금 러시아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황새는 10 마리에서 20 마리 정도 겨울철에 잠깐 볼 수 있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1년 내내 살고 있는 텃새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사람들의 사는 공간은 계속 넓어지고, 야생동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위협을 받고 있는 거죠.

◇ 박재홍> 그만큼 또 새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까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거군요. 그리고 박사님이 개인적으로도 황새랑 뗄 수 없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면서요?

◆ 윤종민> 제가 황새 일을 시작한 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1970년도 초에 우리나라에 마지막 황새쌍이 있었는데요. 수컷이 사냥꾼 총에 맞아서 죽었고요. 그 수컷 황새가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표본이 돼 가지고 박제가 돼 있는데요. 그 박제도 아버지가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때 황새를 잡아와서 부리 길이를 재고 계신 사진이 있더라고요.

◇ 박재홍> 예.

◆ 윤종민> 제가 우연히 이 옛날 사진을 들춰보니까 어머니가 뒤에서 ‘야,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네 아버지한테 눈에 뭐가 씌어서 결혼을 하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 황새가 없었으면 저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고요. 지금 하는 일도 어떻게 하다 보니까 또 황새 일을 하게 됐고요. 또 올해 9월에 첫 황새들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길이 생겼는데요. 황새를 방사하는 지역이 또 어머니의 고향인 예산으로 결정됐어요. 정말 이렇게 많이 엮였더라고요. 열심히 일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재홍> (웃음) 황새사진이 아버님의 프로포즈 선물이었고요.

◆ 윤종민> 네, 그렇죠.

◇ 박재홍> 또 아드님은 황새연구를 하게 됐고요. 또한 황새가 돌아가는 길이 어머니의 고향인 예산으로 결정됐네요. 어떻게 보면 황새가 윤 박사님의 가정에 인연이 많은 새가 됐네요.

◆ 윤종민> (웃음) 과거에 황새에게 빚을 많이 져서 그런지 열심히 도와줘야 될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웃음) 네, 맞습니다. 오늘 말씀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종민> 감사합니다.

◇ 박재홍> 화제의 인터뷰, 오늘은 아버지 뒤를 이은 차세대 새 박사죠.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의 윤종민 연구원을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