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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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김용택 (섬진강 시인)
◇ 박재홍> 박재홍의 뉴스쇼, 어린이날 아침에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이 아침, 이 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참 어울릴 것 같아서 모셨는데요. 세월이 흘러도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김용택 시인을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용택> 안녕하세요.
◇ 박재홍>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웃음) 어린이날과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선생님이 방금 들려주신 웃음소리..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셨는데 선생님 계신 곳 지금 어떤가요, 봄 풍경 말씀해 주실까요?
◆ 김용택> 지금 산천은 꽃들이 다 지고 나서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찰라입니다. 이때 오동꽃이 피어요. 마지막으로 봄꽃인 오동꽃이 보라색으로 피어납니다.
◇ 박재홍> 그야말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 김용택> 초여름으로 건너가고 있죠.
◇ 박재홍>오늘 뭐니뭐니해도 어린이날인데요 선생님,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 김용택> 저는 어떤 날에, 그 뜻을 두고 있지 않고 사는 사람인데. 평소에 잘하고 싶어요.
◇ 박재홍> 평소에.
◆ 김용택> 어떤 날에 잘하고 싶은 게 아니고, 평소에 모든 걸 잘하고 싶습니다.
◇ 박재홍> 평소에 아이들에게 해 주듯이, 어린이날도 보내고 계신다는 말씀인데.
◆ 김용택> 당연하죠. 어떤 날만 잘하고 그 다음부터는 잘 못해도 되겠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 박재홍> 맞습니다. 항상 365일을 어린이날처럼 아이들에게 잘해야 되는데. 선생님 어린 시절에도 어린이날이 있었죠?
◆ 김용택> 없었죠. 저희들은 어린이날은 있었지만, 우리가 자랄 때는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어린이날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해 준 것도 없었죠.
◇ 박재홍> 특별히..
◆ 김용택> 학교에서 어린이날 쉬었습니다. 쉬면 이때는 못자리라고 일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아마 집에서 일을 했을 겁니다.
◇ 박재홍> 어린이날에 또 모내기까지 일을 하셨어요?
◆ 김용택> 그렇죠. 시골에서는 어린이날이 없었죠.
◇ 박재홍> 그러면 어린이날 선물은 기대도 못하셨겠네요.
◆ 김용택> 그렇죠, 어린이날 선물을 받아본 기억도 없고. 어린이날을 챙겨서 어른들이 뭐 특별한 일을 해 준 적도 없죠.
◇ 박재홍> 그러면 선생님께는 어린이날이 그렇게 좋은 아름다운 추억이 없겠습니다.
◆ 김용택>시골이라 제가 자라면서 선물을 전혀 안 받았는데, 시골 아이들은 제가 교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사서 나눠준다든가 공책을 한권씩 사다준다든가. 아마 이런 일이 있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 박재홍> 옛날에는 사탕 하나만으로도 좋아하고 공책 하나만으로도 정말 기뻐했던 것 같아요.
◆ 김용택> 그렇죠.
◇ 박재홍> 그때의 아이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사는 모습. 환경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김용택> 하늘과 땅 차이가 나죠. 그때는 모든 게 없었고 가난했잖아요. 그래서 뭘 부모들이 따로 사준다든가 이런 게 별로 없었고. 특히 시골 농촌 같은 경우에는 어린이날이 특별한 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 때가 산에서 고사리 끊을 때인데, 어머니들이 고사리를 꺾어오면서 망태에다 산에서 잘 자란 찔레를 꺾어서 왔죠. 그걸 먹는 게 가장 큰 선물이었죠, 우리들에게는.
◇ 박재홍> 찔레. 그래요.
◆ 김용택> 찔레순이 굉장히 맛있거든요.
◇ 박재홍> 어떤 맛인가요?
◆ 김용택> 찔레에도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하얀 색깔이 있고 하나는 붉은 색깔이 있는데. 하얀 색깔은 달콤하고 서방찔레라고 했죠. 불그스름한 것은 가시찔레라고 했거든요. 짭쪼름하죠.
◇ 박재홍> 달콤한 맛.
◆ 김용택> 굉장히 맛있어요.
◇ 박재홍> 달콤하고 짭쪼름한 맛. 이것이 바로 어린 시절 봄에 느꼈던 맛이었는데.
◆ 김용택> 그렇죠.
◇ 박재홍> 요즘 아이들은 찔레꽃이 있는 줄도 모를 것 같아요.
◆ 김용택> 찔레순, 찔레넝쿨이 있는지도 모르죠. 어제도 시골에 있었더니, 어린이날 저녁이어서 아이들이 저희 시골집에 많이 놀러왔어요. 같이 강 이야기도 하고 어린시절 찔레순 얘기도 했는데 전혀 몰라요.
◇ 박재홍> 시골인데도.
◆ 김용택> 그래서 어머니들께 부탁을 했죠. 길 가다가 찔레순 있으면 꺾어서 줘봐라. 그런데 잘 몰라요.
◇ 박재홍> 아, 그래요. 요즘 시골 아이들마저도 자연과 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는데.
◆ 김용택> 그렇습니다.
◇ 박재홍>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들도 서너 개씩 학원 다니고. 또 밤 10시까지 공부한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 이런 모습 보시면서 어떤 생각 드세요?
◆ 김용택> 제일 드는 생각이 도대체 우리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아이들에게 무조건 공부만 시키는 것 같은데, 공부해서 뭐하자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놀게 해 줘야 되는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놀이를 다 빼앗아 버렸어요, 노는 걸 빼앗아버렸어요.
◇ 박재홍> 우리 아이들의 놀이를 빼앗았다.
◆ 김용택> 놀이라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무엇이 중요한지, 삶이 무엇인지, 이웃이 무엇인지, 친구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어른들이 심어주고 있죠.
◇ 박재홍> 그러니까 1등을 해야 될 것 같고. 또 왠지 공부를 안 시키면 뒤처지는 것 같고. 이런 불안감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 김용택> 그렇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커서 어른이 돼서 정말 세상과 맞닥뜨리고 살 때, 어떤 삶의 가치를 찾아서 사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죠.
◇ 박재홍> 모든 부모님들을 선생님이 계신 섬진강으로 보내드려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김용택> 어린이날을 맞아서 어린이들을 키우고 있는 어머님들, 또는 학교, 또는 국가가 정말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 박재홍> 성찰의 기회를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선생님은 아름다운 시를 많이 쓰셨는데 어머니께서 시를 잘 쓰셨다, 그러니까 시를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이런 말을 들었어요
◆ 김용택> 그렇죠, 어머니께서는 학교도 안 다니시고 글자도 모르고.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는데. 시골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자연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어요.
◇ 박재홍> 자연이 하는 말.
◆ 김용택>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잘 따르고. 또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형상들을 다 자기들의 삶으로 가져가서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해줬죠. 예를 들어서 지금처럼 오동꽃이 필 때 소쩍새가 울어요. 소쩍새하고 두견새하고 사람들이 구별을 잘 못하는데. 소쩍새는 소쩍소쩍 이렇게 우는 새예요. 두견새는 밤에 울죠. 밤새입니다. 그런데 소쩍새가 그렇게 소쩍소쩍 소쩍새가 우는데. 어떤 해에 우는 소쩍새는 소텅소텅 하고 운대요.
◇ 박재홍> 소텅이요.
◆ 김용택> 그럼 그해 우리 동네는 흉년이 듭니다. 솥이 텅텅 비기 때문에
◇ 박재홍> 솥이 텅텅 빈다 해서 소텅.
◆ 김용택> 또 어떤해는 소꽉소꽉 소꽉꽉 이렇게 운대요. 그렇게 울면 풍년이 드는 거죠. 솥이 꽉꽉 차니까. 그걸 받아쓰면 시가 되었던 거죠.
◇ 박재홍> 자연의 소리.
◆ 김용택>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시인이었어요. 어머니 따라다니면서 제가 시를 받아썼죠. 어머니 말씀이 다 시였거든요.
◇ 박재홍> 선생님 작품이 아니라 어머니가 말씀하신 걸 그대로 적었더니 시가 되었더라.
◆ 김용택>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잘 받아서 말하시면, 제가 어머니가 하는 말을 시로 잘 받아 적었죠.
◇ 박재홍> 21세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 김용택> 조선시대 때 과거시험 문제가 시를 잘 표현한 사람을 뽑아서 나라를 관리시켰거든요. 관리라는 게 너무 중요하잖아요. 나라를 관리시킬 정도면 굉장히 시가 중요했던 거죠. 한 편의 시를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힘을 갖추게 되고, 또 세상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되고,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그 생각을 쓰게 되는데, 쓰게 되면 생각을 조직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받아들일 힘이 생겨요. 시는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재홍> 하나로 응축된 것이 바로 시로 구현된다, 이런 말씀인데.
◆ 김용택> 그렇죠. 시를 이해하는 게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어요.
◇ 박재홍> 우리 국가지도자들이 말씀을 잘 들어야겠네요.
◆ 김용택> 시로 세상을 물어봐야 하는. 이 아름다운 5월 산천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산천을 한 편의 시로 읊을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돼요.
◇ 박재홍> 이 방송 듣고 있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고하셔야겠어요. 오늘 어린이날인데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 주실까요?
◆ 김용택> 어린이 여러분. 오늘부터 어머니 말을 듣지 말고 어머니 말은 참고만 하고.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은 어머니 보고 하시라고 하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걸 찾으세요. 좋아하면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면 잘 합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죠.
◇ 박재홍> 어린이들이 꼭 선생님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용택> 감사합니다.
◇ 박재홍> 어린이날을 맞아서 시인 김용택 선생님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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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5/5(화) 김용택 "어린이들.. 부모님 말씀은 참고만 하세요"
201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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