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01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
그대아침
2025.12.01
조회 117
외식이 흔치 않던 시절, 어쩌다 있는 외식은 주로 돼지갈비였다.
하얀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 시끌벅적한 어수선함. 물론 맛은 좋았지만
나는 조금 더 조용하고 특별한 곳에 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양식 코스 요리를 먹는 장면을 봤다. 반짝이는 포크와 나이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도 저런 데 가보자!" 
그리고 어느 날, 다 같이 경양식집에 가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조른 걸
부모님이 기억해 준 모양이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자 정갈한 식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짝이는 식기, 얇고 투명한 유리컵, 부드러운 크림색 테이블 매트.
나는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서로 눈치를 봤다.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걸까. 엉거주춤 서 있던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데 갈까?"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들어와 빠르고 부드러운 말투로 오늘의 스페셜 메뉴를 소개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낯설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스테이크를 골랐다. 주문이 끝나고 나서야 얼었던 공기가 잠시 풀렸다.
그러나 수프가 나올 무렵 조용한 방안은 다시 긴장이 감돌았다.
미묘한 팽팽함 속에서 혼자 능숙하게 움직이던 웨이터가 다가왔다.
"000으로 만든 수프입니다. 향을 음미하며 드셔 보세요."
나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집으려다 멈칫했다. 숟가락이 세 개나 있었다. 
슬쩍 엄마 아빠를 바라봤다. 그때, 조용한 테이블에 아빠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울렸다.
"제가 이런 데는 처음이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한마디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살짝 굳은 표정, 어색하게 손등을 문지르던 아빠.
조금 긴장했지만 꾸밈없이 담백하게 건넨 말이었다. 
나는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낯선 공기 속에서도 아빠는 그냥 우리 곁에 있었다.
멋을 부리지도, 숨지도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순간, 알았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 모르는 세계에 주저 없이 발을 내딛고 있다는 걸.
그 작은 용기가 나에게는 세상의 어떤 멋진 모습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는 결국 각자 고른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먹었다. 누가 맞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포크나 숟가락의 순서를 몰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서툴러도 기쁘게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귀덕의 <마음을 봉숭아로 물들일 거야>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