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둘째 녀석의 사춘기도 거의 막바지를 치닫고
있는 것을 보면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는 어느덧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실 지금도 의문스럽긴 하다. 그 당시 아이들의 사춘기 수위가 왜 그렇게 셌는지..
집안 분위기가 그다지 엄격한 것도 아니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부분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 된 입장에서 그야말로 답이 없었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알래스카에 나 혼자 와 있는 듯했다.
이유를 알아야 해결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엄마인 입장에서는 온종일 그 혹독한 추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 하교 후 집에 들어온 아이는 자신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고,
이후로는 전혀 볼 수조차 없었다. "엄마가 뭘 알아?"라는 말!
그 당시 첫째 딸아이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얘기다.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엄마인 내가 자신을 알지 못하니
그 무슨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을 테고, 설사 얘기를 하더라도
엄마인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린 게 아닌가 싶다.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숨 막히는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남편은 파김치가 되어 있는 나를 향해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다.
정말이지 혹독하리만큼 추운 알래스카를 헤매다가 이글루를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하루 종일 졸인 마음의 허기도 채우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추위도 녹일 수 있었던
그 말 한마디는 내가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를 그나마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만약 남편이 그런 나의 힘든 마음도 몰라준 채 무조건
아이의 편에 서서 나를 외면했다면 지금의 우리 가정이 존재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만큼 난 사춘기 아이를 대하는 게 너무나도 힘이 들었고,
남편은 중간자 입장에서 최대한 부인인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처럼 그 혹독하고 잔인했던 사춘기의 기억도
지금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따스했던 이글루 씨가 있었기에 그 추웠던 알래스카를 벗어나
우리 가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 말은 언제라도 듣고 싶은 얘기다.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김미영의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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