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싶다가 집안이 너무 엉망인 것 같아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커피를 한잔 내리고 음악을 틀었다.
주방부터 거실까지 하나씩 치우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방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바쁘다고 던져놓았던 쇼핑백부터 책상까지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는데
더는 책을 놓을 공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많은 책이 쌓이게 된 걸까.
정리를 하다 말고 침대에 기대 가만히 생각해봤다. 음악을 시작한 게 시작이었나.
초등학교 때 우연히 읽었던 시가 좋아서 도서관에 들락날락한 게 시작이었나.
운동을 그만둔 게 시작이었나. 아버지가 중학교 때 심심하면 들으라면서 사다 주신
턴테이블 때문이었나. 누나랑 같이 여름방학 때 인터넷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 때문인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읽고 첫 줄에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 때문인가.
온갖 이유를 따져 봐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어느 순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때가 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순간 사랑을 하고 있었고 눈을 떠 보니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나에게서 무언가가 멀어지고 있는.
나는 각도기 이론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론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각도기로 삶을 이야기한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내가 붙여버린 이름이다.
각도기에서 실제로 1도 차이는 정말 티끌만큼 작은 차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바로 앞에선 1도밖에 틀어져 있지 않던 것이 길게 이어지고 이어질수록
점점 차이가 심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내 삶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싶어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내 삶의
각도를 벌려놓지 않았나 싶다. 당장 그때는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게 없었지만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쓸모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은 어떤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내 삶의 각도가 1도는 달라져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최대한 많은 것을 두드리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언제 내 삶이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박근호의 <당신이라는 자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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