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는 숨김없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유아 미술 심리라는 분야가 따로 있다.
아이를 낳고 보니 관심이 생겨 여러 번 그림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했다.
아이가 특정 색을 많이 쓸 때엔 왜 온통 저 색깔만 고집할까, 숨은 뜻이 뭘까 고민했다.
선을 제대로 잇지 못하거나 도형을 채운다기보다 마구잡이로 손을 움직이는 일에만
시간을 보내는 듯 싶을 때엔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게 뭣을 바랄까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그려내는 모든 것에
물개 고음으로 칭찬하고 뭘 그렸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어깨가 으쓱해 자신이 그린 것을 자랑했다.
아이와는 속도를 맞춰 걸어야 하는데 발이 빨라 자꾸만 앞에서 아이를 채근하는 날이 많다.
그 와중에도 날마다 그림을 그리지만, 뭘 그렸나 자세히 보면
도통 형체를 알 수 없어 내 머릿속은 무수한 물음표를 그린다.
이를 알 리 없이 어깨를 으쓱하는 아이를 두고 이 나이에 이 정도 그리는 게 맞나 고민했다.
어느 날 저녁에 설거지하는 사이 보드 칠판에 아이가 소리없이 뭔가를 그리더니 보란 듯 내 손을 잡아끈다.
어머나 그간 점 두 개 찍고 동그라미는 찌그러진 만두처럼 삐뚤빼뚤하던 녀석이 동그랗게 얼굴을 그리고
눈과 코와 입을 정확한 위치에 웃는 나를 그려낸 게 아닌가. 그게 너무 신기해 물에 젖은 고무장갑을
벗은 채 환호하며 두서없는 질문을 마구 쏟아냈다. 빙그레 웃던 아이는 여느 때보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 원래 알았어. 내가 그냥 알게 된 거야.” 한다. 그래 누가 알려줬겠나.
네 속에 있던 게 때가 돼 나온 거겠지. 불안하고 의심한 게 새삼 미안했다.
아이의 그림 실력은 속도감 있게 늘었다. 여전히 형체는 울퉁불퉁하고 뭣을 그린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용감하게 색을 썼고 머뭇거림 없이 선도 단숨에 그었다.
기다리지 못하고 다그쳤다면 그르쳤을 일들이다. 생각보다 아이의 사고는 간단하다.
천천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간 잘하라고만 했지 천천히 하라고 느긋하게 얘기하지 못한 게
새삼 부끄러웠다. 급한 성격에 불길이 붙어 아이보다 먼저 가더라도 그 앞서간 자리에서 아이에게는
태연한 얼굴로 "괜찮아. 천천히 해봐."라고 숨을 고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 말이 다급한 순간 아이에게 가장 큰 응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신량의 <그 분홍 노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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