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05금 오늘도 우리는 일하고 먹고 만나며 늙어간다
그대아침
2025.12.05
조회 57
최정례 시인의 「늙은 여자」라는 시를 읽었다.
“한때 연애를 하고 배꽃처럼 웃었기 때문에 더듬거리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는
대목에서 할머니들 얼굴이 붉어졌다. 연애하던 생각들을 하시는 게 분명하다.
“한때 배꽃이었고 종달새였다가 풀잎이었기에” 할머니들은 이제 늙은 여자가 되었다.
옛 기억도 사라지고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초시간적인 존재가 되었다.
시간은 늘 여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CD로 구워 첩첩이 쌓아놓은
시간대 중에서 아무거나 빼내어 현재로 불러온다. 말랑말랑한 찰흙으로
집과 밭을 만들고 그 밭에 콩 보리 조 수수 등 곡물을 심을 때,
그들은 아직도 젊은 농사꾼이자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아낙이다.
암마이산과 수마이산 옆에 데미샘을 파고 나무를 심고 콩과 깨를 타작하는 안마당을
얘기할 때, 그들은 고생스러웠지만 빛나는 생으로 돌아간다. 콩과 팥을 고를 때, 
그들은 달빛과 별빛과 아궁이에 익어가는 고구마 냄새를 느낀다.

젊음은 아름답고 빛나지만 그것만을 예찬하고 늘 젊은 정신과 몸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시간을 보냈으면 늙어가고 조금씩 탈이 나고
약해지는 게 당연하다. 요양원 계신 할머니들 중에는 나이 80, 90 넘었어도
유난히 편안하고 얼굴이 빛나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을 보면 대체로 욕심이 없다.
가만가만 움직이고 물끄러미 찬찬히 바라보고 별 불평불만도 없고 잘 웃고
감사하단 말도 잘하신다. 부질없는 욕심들이 제거된 얼굴의 잔주름마다 잔잔하게
평화가 담겨 있다. 용서할 분노도 미움도 없이, 용서받을 죄의식도 부채감도 없이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이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늙어가는 것 또한 두려워 말자.
나는 나만이 아닌 나를 담고 태어나 나만이 아닌 것을 담은 채 살다
나만이 아닌 나를 남기고 사라져갈 뿐이니...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
과거를 해석하기에 따라 재구성이 가능하듯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다르게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나이들면서 마음도 점점 더 편하고 놓을 것 놓게 되고 
그다지 안달할 것도 없고 분노할 것도 줄어든다.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다 싶으니
불필요한 것은 저절로 자르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해진다.
오늘도 일하고 먹고 만나며 늙어간다. 

*김해자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