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209월 사부작사부작 행복을 접어요~
그대아침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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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를 지키는 것에 꽤 능숙하다. 어릴 적, 시장이나 놀이터에서 엄마가
“상현아, 여기 가만히 있어야 해. 엄마 금방 다녀올게.”라고 말씀하신 후 자리를 비울 때면,
팔을 쭉 뻗은 한 발의 영역에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던 아이였다. 내겐 그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언뜻 보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이나 돌, 모래를 만지작거린다든지,
사람, 강아지, 비둘기를 하나하나 응시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다든지,
나름 바쁘게 사부작사부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부작 친구는 종이였다. 물론 흰색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가장 좋아했지만, 다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것이 있다.
바로 색종이 접기. 처음에는 비행기, 배, 모자, 나무 같은 단순한 것들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나의 실력과 욕심이 올라감에 따라 높은 난도를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다른 것이 동물 접기와 공룡 접기. 그 과정에서 작은 진리들도 깨우쳐 갔다.
종이는 한번 접으면 돌이킬 수 없는 표시가 남게 된다. 그래서 한 번을 접을 때도
정확한 끝과 끝을 맞추어 신중하게 접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러 번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다 보면
점점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 혼자 살며 요리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잘 연마된 기다란 한식도로
커다란 야채들을 망설임 없이 숭덩숭덩 조각낸다. 주로 써는 것들은 무, 양배추, 오이, 당근, 파프리카.
토각토각. 토각토각. 단정한 소리가 부엌과 집을 채워나간다. 하나가 반이 되고,
반의반, 반의반에 반, 계속 작아지다가 모두 비슷한 크기의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남을 때까지.
잔뜩 썰어진 야채는 소독된 유리병에 가득 담아 한소끔 끓여놓은 피클 물을 부어 둔다.
그럼 한동안 매 끼니의 훌륭하고 건강한 곁들임 반찬이 되어준다. 

사부작사부작의 핵심은 나긋한 시간에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생각지 않는 시간.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홀가분하게 보내는 시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며칠간 잘 숙성된 무피클 한 조각을 아작아작 씹으면서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색종이 접기를 다시 해볼까. 

*상현의 <집, 다음 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